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풀려났어도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된 건 아니다. 6일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가 그를 석방하며 사실상 ‘자택 구금’ 수준의 엄격한 보석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이날 보석 조건을 설명하기에 앞서 재판부는 보석 허가가 ‘오로지 재판을 충실히 진행하기 위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다음달 8일이면 이 전 대통령이 구속 기한 만료로 풀려나기 때문에 차라리 엄격한 조건을 붙여서 석방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의 ‘황제 보석’ 논란을 의식한 듯 건강 문제로 인한 병보석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동안 이 전 대통령 사건은 김인겸 부장판사(현 법원행정처 차장)를 중심으로 한 재판부가 진행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법원 정기인사로 지금의 재판부로 변경됐다. 오는 4월8일 만료되는 이 전 대통령의 구속기한까지 1개월쯤 남겨둔 시점이었다.
1개월 동안 방대한 사건기록을 검토하고 선고까지 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1개월 동안 무리해서 선고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인 중대한 사건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속전속결로 재판했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재판부도 “구속만기일에 판결을 선고한다 해도 재판부에게는 고작 43일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며 “채택한 증인 중 심리를 마치지 못한 증인의 숫자를 감안하면 구속만기까지 충실한 심리를 끝내고 선고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보증금 10억 내고 풀려난 MB, 외출·통신 제한돼
주거지는 논현동 사저 한 곳으로 제한했다. 이 전 대통령은 앞으로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법원의 사전 허가를 받고, 복귀 후에도 법원에 보고해야 한다. 당초 변호인단은 서울대병원도 주거지에 포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입원할 정도의 진료가 필요하다면 오히려 보석 허가를 취소하고 구치소 내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게 타당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배우자와 직계 혈족 및 그 배우자, 변호인 외에는 누구도 만나거나 연락할 수 없게 했다. 문자ㆍ이메일ㆍ전화 모두 금지된다. 주거지 인근의 서울 강남경찰서로부터 감시도 받게 된다. 이 전 대통령 본인도 매주 재판부에 시간별 활동 내역 및 보석 조건 이행 상황을 보고해야 한다. 만일 보석 조건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게 드러나면 보석이 취소되고 10억원의 보증금도 몰수된다.
박병규 변호사(법무법인 이로)는 “말만 보석이지 가택연금(거주지에 감금되는 형벌)과 비슷한 수준”이라면서도 “보석 자체가 일반 피고인들에게는 꿈꾸기 어려운 선처라 불만을 가질 거리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재판부도 이 전 대통령에게 “헌법상 기본권을 일정 부분 침해하는 것이니 변호인과 충분히 상의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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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통령 측 강훈 변호사는 재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제가 변호사를 하면서 (본 것 중) 보석 조건이 가장 많았다”며 조건이 다소 가혹하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도 “그냥 구치소에 있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의견을 구했고, 특히 보석 보증금 10억 원을 두고선 “(재판부가) 나를 증거 인멸할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강 변호사는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보석조건이 엄중하긴 해도 못 지키실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 하에 조건을 감수하기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대통령의 석방 소식을 들은 검찰 측은 아무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그동안 법정에서 보석에 반대하는 의견을 충분히 개진했다. 지금 추가로 말할 입장은 없다”고만 짧게 밝혔다.
박사라·백희연 기자 park.sa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