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은 2017년 7월 홍콩의 한 시민단체가 설치했다. 한복 차림의 소녀 곁엔 옷차림이 다른 두 소녀가 앉아있다. 한국과 홍콩(중국), 필리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한 세 소녀는 홍콩 최고 번화가인 센트럴에서 국제금융센터로 이어지는 육교 위에 자리 잡았다. 우리로 치면 서울 명동쯤 되는 곳이다. 인근엔 주홍콩 일본총영사관이 있다.
구릿빛의 소녀들은 한결같이 옅은 미소를 짓고 있다. 이들 곁엔 메모판이 설치돼 있다. 세계 각국 언어로 적힌 메시지가 한가득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진심으로 사과해주세요. 평생 미안함을 가져주세요” “사과는 받는 사람이 그만이라고 할 때까지.”
3·1절 당일엔 홍콩과 선전, 광저우 교민들이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 앞에서 일본 정부에 사과를 요구하며 1시간 동안 침묵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일본 측의 응답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사과 요구에 침묵하는 일본의 모습은 새롭지 않다.
이런 와중에 사과를 받아야 할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줄어들고 있다. 2일엔 곽예남 할머니가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40명 중 생존자는 22명에 불과하다.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인공 나옥분(나문희 분) 할머니는 조롱을 일삼는 일본인들에게 “아이 엠 소리(I am sorry).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냐”고 일갈한다. 일본 정부의 사과가 늦어질수록 상처로 얼룩진 할머니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길은 요원해진다.
홍콩 소녀상엔 누군가가 노란 국화를 꽂아놓았다. 노란 국화의 꽃말은 ‘실망’이라고 한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에 소녀들이 실망을 거둬들일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이들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김기정 사회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