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터뷰]靑에 걸려 화제된 김구 초상화···왜 하필 쌀로 만들었나

중앙일보

입력 2019.03.01 10:23

수정 2019.03.0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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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터뷰] 3·1절에 다시 불러낸 독립운동가

 
 
 

경기도 양주 가나아뜰리에 작업실 바닥에 누운 이동재 작가, 3.1절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흑과 백으로 된 옷을 입었다고 했다.

이동재 작가가 누웠다.
안중근, 김좌진, 한용운, 전봉준 존영과 함께다.
그가 만든 존영들이다.
3·1운동 100주년에 이 작가가 눕터뷰 주인공인 이유다. 
 

icon_Kim gu / 쌀을 한 톨씩 붙여서 만든 초상이다, 실제 크기는 100 x 100 cm /이동재 작가 제공

지난해 10월, 이 작가가 화제의 중심에 선 적 있다.
청와대에 그의 작품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바로 김구 선생의 존영이었다.


그런데 그 존영이 여느 작품과 사뭇 달랐다.
쌀을 한 톨 한 톨씩 붙여서 만든 작품이었다.
 
이 작가에게 당시 일을 질문했다.
“어떤 이유로 김구 선생 초상이 청와대에 걸린 겁니까?”
 
“백범 친필인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를 유족이 청와대에 기증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선생의 친필과 나란히 존영을 감상할 수 있게끔, 청와대에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제 작품을 임대했다고 들었습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는 백범 서거 한 해 전 작품이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 눈 내리는 벌판 한가운데를 걸을 때라도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 어지럽게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들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니.
大韓民國三十年十月二十六日七十三歲白凡金九/ 대한민국 30년 10월 26일 73세 백범 김구
 
 
“그런데 왜 쌀로 존영을 만든 겁니까?”
 
 
“우리 선조들이 한반도에 정착한 후 가장 중요한 작물이 쌀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가진 쌀과 김구 선생이 품은 민족 정체성이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녹두를 한 알씩 붙여서 만든 녹두장군 전봉준 초상.

그는 일찍이 쌀 뿐만 아니라 우리 곡물로 만든 작품으로 주목받는 작가였다.
콩, 팥, 녹두, 좁쌀 등의 소재인데 오늘날까지 이 작가를 이끌어 온 주춧돌이었다.
 
녹두로 만든 녹두 장군 전봉준,
콩으로 만든 미스터 빈,
현미로 만든 가수 현미,
쌀로 만든 라이스 전 미국 국무부 장관 등으로 이미 스타 작가 반열에 올라있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한용운 선생,녹두장군 전봉준이다.

눕터뷰 사진을 찍으려 그가 어렵사리 준비한 게 모두 네 작품이었다.
 
레진 소재 알파벳으로 만든 안중근 의사,
레진 소재 별로 김좌진 장군,
크리스털로 만든 한용운 선생,
녹두로 만든 녹두장군 전봉준이었다.
그는 이미 곡물을 넘어 다른 소재로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사진 촬영 준비를 하는 데 그가 말했다.
“사실 3.1운동 컨셉에 맞게끔 옷을 흑과 백으로 입고 왔습니다.”
 
그의 말에 적잖이 놀랐다.
미처 생각조차 못 했는데 그가 알아서 준비한 게다.
 

이동재 작가가 알파벳 KOREA를 찾고 있다.

 
조명을 조정하는 동안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 뭔가를 했다.
엎드린 채 알파벳을 바닥에 뿌리고 있었다.
 
“뭔가요?”
 
“이왕이면 KOREA를 바닥에 놓아보려고요.”
 
과연 섬세했다.
두 대형 작품과 사람 크기를 감안 할 때,
손톱보다 작은 알파벳이 눈에 띄지도 않을 터다.
그런데도 그는 미세한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다.
 
쌀 한 톨씩,
좁쌀 하나씩,  
팥 한 알씩 붙여서 초상을 만드는 섬세함이
그의 말과 행동에서도 읽혔다.
 
 
 

서울 성북동 '60 화랑'에서 한용운, 김환기, 조지훈, 이태준, 전형필 초상과 함께 텍스트 시리즈도 전시되고 있다. 6월까지 전시 될 예정이며 무료다. 사진 이동재 작가 제공

 
“요즘은 쌀과 곡물이 아니라 다양한 소재로 작업하시죠?”
 
“그렇습니다. 그런 소재들만으로 작업하면 쌀 작가, 곡물 작가로 규정됩니다. 예술이란 게 규정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양한 소재를 작품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성북동 60 화랑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이 그런 것인가요?”
 
“맞습니다. 제가 성북동에 산 지 2년쯤 되었습니다.
살면서 여기 흔적이 있는 예술가들의 삶을 한 걸음씩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한용운, 화가 김환기, 시인 조지훈, 소설가 이태준, 문화재 수집가 전형필의 초상을 크리스털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왜 다시 그들을 불러냈을까?
60화랑 김정민 디렉터가 쓴 글에서 다섯 초상을 다시금 불러낸 이유가 읽혔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불운 탓에 자기 뜻을 펴지 못한 성북동의 대가들이 크리스털 씨앗을 통해 다시 피어나는 듯 화사하여, 다가올 성북동의 봄 향기가 물씬 풍긴다.’  
 

사라졌으나, 다시 초상으로 존재케 함으로써 잊힌 뜻을 다시 불러 낸 이동재 작가, 나누고 소통하자는 의미라 했다.

 
이 글을 통해 그동안 그가 만들어 온 초상의 의미가 전해져 왔다.
누구 하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아주 작은 알갱이들로 하여금,
사라졌으나,  
그 얼굴 다시 존재케 함으로써,
품고 펼쳤으나 이제는 잊힌 뜻을 다시 나누고자 함인 게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작가 이동재가 바닥에 누운 이유다,
안중근, 김좌진, 한용운, 전봉준 존영과 함께….  
 
사진·글·동영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shotgun@joongang.co.kr) 
 
 
 
 
눕터뷰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