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론자라 알려졌던 A는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극약처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우리가 남이가’ 문화와 지연·혈연주의를 깨야 한다고 했다. 진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에게 닿을 수 있는 사람은 적은데, 권력자 주변의 파워엘리트를 통해 청탁할 수 있다는 인식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대화 말미에 A는 예상 못 한 말을 했다. “이 기자, 이건 오프(더 레코드)인데 말이야. 경제가 걱정이야. 우리 지하경제 규모가 상상 이상이거든. 선물 가액을 제한하면 당장 서민이나 소상공인들의 매출이 줄 수 있어요. 경제를 생각하면 김영란법이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야.”
반대론자로 급부상하던 B는 왜 ‘김영란법’을 제정해선 안 되는지 설파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 법 위반인지가 모호한 데다, 국민 청원권이 제한받을 수 있다”고 했다. 공적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은 국민의 고충을 해결할 의무가 있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나 몰라라 할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대화가 끝날 때쯤 B 역시 생각지 못한 말을 꺼냈다. “이 기자, 이건 오프(더 레코드)인데 말이야. 내가 강경 반대론자로 알려진 모양인데, 사실 이 법 디테일은 잘 몰라. 그냥 총대 멘 거지. 일단 뭐 새로운 규제를 만들면 없애기 힘들잖아. 김영란법에 기자도 넣자고 한다며? 이런 거 만들면 피곤해지지 않겠어?”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넘었지만, 법 위반 여부가 모호해 법의 심판대에 오른 사람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군가는 “요즘 밥 먹고 술 마실 때 눈치 안 본다. 딱히 단속도 안 하는 법을 누가 지키느냐”고 말한다. 법 제정 주역이던 김기식 의원은 지난해 금감원장 취임 14일만에 사임했고, 김영란 서강대 로스쿨 교수도 최근 책을 쓰겠다며 현직에서 조용히 은퇴를 했다.
4년이 지난 지금, 두 명의 정치인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 건 그들이 말한 ‘이건 오프인데’ 때문이다. 찬성론자던 A는 부작용을 걱정했고, 반대론자라던 B는 법을 잘 모른다고 했다. 정치인이 겉으로 보여주는 ‘입장’은 얼마나 속내에 부합할까. 국민은 정치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둘 중 한 명은 지난 27일 한국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다. 그가 누구인지, 선거에서 당선됐는지…. 이건 오프다.
이동현 산업1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