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3시 인천 남동구 구월동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독립운동가 김란사(1875~1919) 지사의 삶을 다룬 창작극 ‘100년 후 꿈꾸었던 세상’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3월 1~3일 인천예술회관서 관련 창작극
한국 여성 최초 미국 문학사 학위 취득
유관순에게 “조선의 등불 되어 달라”
1872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 지사의 집안은 비단과 면직물을 파는 포목상을 운영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사와 사업을 이어가다 1893년 결혼했다. 남편 하상기가 인천항 경무관이 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국가를 지키는 데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듬해 이화학당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결혼했다는 이유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학장과 인터뷰에서 뚜렷한 목적과 의지를 보여준 김 지사는 입학을 허가받았다. 그는 이후 일본 유학을 거쳐 1897년 미국 오하이오주 웨슬리언대학 문과에 입학, 6년 만에 한국 여성 최초로 문학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엔 이화학당 교사로 일했다. 이화학당 학생이던 유관순 열사에게 “조선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달라”며 이화문학회 가입을 권유해 독립운동의 길로 이끌었다.
또 김 지사는 미국에서 의친왕과 동문수학한 인연으로 고종의 통역사로 활동했다. 고종은 의친왕과 김 지사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내 독립을 승인받게 하려 했지만,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그해 3·1운동 이후 다시 파리강화회의 참석을 위해 떠난 김 지사는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김 지사 남동생의 손자인 김용택 김란사 추모사업회장은 “베이징 동포들과 만찬 자리에서 일본 스파이에게 독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1995년 국가보훈처는 여성의 애국정신을 고취했다며 김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때는 김란사가 아닌 하란사였다. 미국 입국 서류에 남편의 성을 따라 하란사라고 적은 것이 그대로 쓰였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2015년 정정을 요청해 지난해 2월 ‘김란사’로 표기된 애족장 수여 증명서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4일 서울현충원에 김 지사의 위패가 봉안됐다.
11년 전 이화 박물관 건립 때부터 김 지사를 연구한 황동진 서울교육박물관 학예사는 “그의 교육은 여성 독립투사 양성을 위한 것이었다”고 평했다. 황 학예사는 지난 20일 『김란사, 왕의 비밀문서를 전하라』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최은경·심석용 기자 choi.eunkyung@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