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숭모비’ 대신 비석만 덩그러니
이 동상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동상을 세울 당시 기단 위에 있던 안 의사 숭모비(崇慕碑)가 감쪽같이 사라진 일이다.
1961년 전국민 성원 속 전국 최초 건립
1995년 안 의사 동상 세우면서 사라져
“안중근 의거 110주년 맞아 비석 찾아야”
하지만 비석은 1995년 자취를 감췄다. 동상을 세울 당시 숭모비 좌대를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비석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숭모비가 사라진 과정은 이렇다.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광주·전남 시·도민과 지역 유림은 1961년 12월 3일 광주공원 내 성거사지 5층탑 뒤편에 안 의사 숭모비를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신사와 일본군 충혼비가 있던 광주공원 터에 비석을 세움으로써 일제 잔재를 청산하려는 의미였다. 지금은 이들 신사 등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해방 직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후예인 광주일고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일본군 충혼비를 때려 부쉈다고 전해진다.
‘안중근 사당’ 장흥 해동사와 함께 독립 상징물
전국 유림과 광주·전남 시·도민의 자랑거리이던 숭모비는 80년대 들어 해체될 운명을 맞았다. 옛 도심이던 광주공원 일대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이전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에 숭모비는 1987년 4월 4일 광주 어린이대공원이 조성된 중외공원으로 옮겨졌다.
1987년 중외공원 이전…비석 해체 후 사라져
옛 숭모비의 기단부를 그대로 사용한 동상은 조각가인 김대길 전남대 교수가 제작했다. 동상의 글자는 서예가인 장전 하남호 선생이 새겼다. 김 교수는 “비석의 기단과 좌대를 그대로 사용하는 바람에 동상을 건립하는 데 애를 먹었다”며 “동상 건립 당시 추진위원들이 직접 숭모비를 내린 후 동상 뒤편 언덕에 세워둔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숭모비를 기억하는 시민과 전문가들은 “안중근 의거 110주년을 맞아 숭모비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909년 10월 하얼빈역에서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암살 의거를 기념한 국내 첫 비석인 만큼 역사적 가치도 높다는 뜻에서다.
노성태(59) 국제고 수석교사는 “안 의사 의거 110주년을 앞두고 수년간 숭모비 행방을 추적했으나 성과가 없다”며 “당시 동상 건립에 참여했던 분들이나 목격자들의 제보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에는 다른 안 의사 상징물도 있다. 1955년 장흥에 건립된 전국 최초의 안 의사 사당인 해동사(海東祠)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선 1955년 10월 27일 안중근 의사 위패 봉안식이 열렸다. 해동사는 지금까지 남아있는 국내 유일의 안 의사 사당이다. 1973년 3월 광주 상무대에 세워진 안 의사 동상도 있다. 이 동상은 110년 전 거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