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년 반 만에 4600명 독서모임 키운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비싼 돈을 내고, 독후감도 쓰고, 오프라인 모임에 시간까지 투자해야 하는 이 독서 모임은 수도권에 사는 2040세대들 사이에 금방 입소문이 났다. 2015년 회원 40명으로 시작한 서비스는 시작 3년 반 만에 유료 회원 4600명, 독서모임이 300개로 불어났다. 독서 모임 기반의 커뮤니티 서비스를 표방하는 스타트업 '트레바리' 얘기다.
트레바리는 지난 12일 소프트뱅크벤처스, 패스트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50억원을 투자받았다. '유료 독서모임'이란 이색적인 사업 모델로 거금을 유치하면서 스타트업 업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 회사는 벤처캐피탈(VC) 자금이 많이 쏠리는 인공지능(AI)이나 블록체인 같은 엄청난 신기술을 보유한 회사들과도 결이 다르다. 투자를 단행한 박지웅 패스트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트레바리는 이미 수천명이 돈을 지불해가며 누군가를 만나고 관심사를 교류하려는 욕망을 해결하고 있다"며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마크 저커버그가 만든 사이트가 지금의 페이스북으로 큰 가능성을 트레바리에서도 엿보았다"고 말했다.
"진짜 '빅 비지니스'는 10년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업"
지난 18일 만난 윤대표는 "입사 1년 만에 회사를 나와 창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PC 시절 한가락 하던 '다음'도 모바일에는 적응을 못 했다. 내가 그나마 모바일에 잘 적응하는 건 어려서 가능했다. 10년, 20년 뒤 또 다른 바람이 불면 나도 회사의 저 아저씨들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나 싶었다.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과 적응력을 키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사업아이템은 대학교 때 꾸렸던 독서 모임이었다. 당시 중학교 동창들과 만들었던 독서모임은 커지고 커져서 수백명이 거쳐 간 매머드급 모임이 됐다.
"돈도 벌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둘 중 하나만 하기 싫고, 둘 다 하고 싶었다. 팔리면 팔릴수록 세상에 도움이 되는 진짜 좋은 걸 팔고 싶었다. 모든 사람이 독서 모임 하나씩을 하면 세상이 얼마나 좋아지겠나."
윤 대표는 "옛날에는 종교·학교 등이 지적인 성장과 공동체적 연대를 모두 가능하게 했지만 21세기에는 이 같은 연결고리가 너무 약해졌다"며 "지적으로 성장하고 가치를 공유, 교류하고 싶은 욕구는 10년, 100년 뒤에도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핫한' 기술을 앞세운 창업을 생각해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인공지능 기술 같은 건 내가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야고, 그리고 이왕 사업으로 하려면 구글보다 잘해야 하지 않냐"며 "100조원 규모의 시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못 가는 목적지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빅 비지니스'는 "10년 뒤에 뜨는 사업이 아니라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업"이다.
독서 클럽 한 곳에는 평균 15~20명의 회원이 가입하는데 테마와 주제는 모두 다르다.
마케팅·문학·젠더 등 넓은 주제부터 무라카미 하루키·강원국 등 특정 작가를 주제로 삼은 곳도 있다. 회원 모집이 쉽지 않은 고루한 주제의 클럽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의미만 있다면 회사 차원에서 모임 개설을 밀어붙인다고 한다. 젠더 주제는 한 때 비인기 테마였지만 최근에는 인기가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토론은 평균 4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격론이 벌어질 때면 모임이 열리는 '아지트'가 문 닫는 새벽 2시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 4개월간 생산적인 논의를 한 클럽들은 토론의 결과물을 책으로 출판하기도 한다.
독서 모임 새벽까지 이어져…4050 회원도 많아
정기 독서 모임 외에도 '중국 IT업계 뽀개기', '밀레니얼이 반응하는 콘텐트 전략' 등 단발성 세션도 매달 30회 가까이 열린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라는 회사의 비전에 맞는 일이라면 독서 모임 말고도 할 게 무한정 많다는 게 윤 대표의 생각이다.
윤 대표는 사업 초창기에 모든 클럽에 다 들어가서 진행자 역할을 했다. 모임의 퀄리티와 회원들의 만족도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사업이 힘들어서 모임 후 남은 피자·치킨으로 끼니를 해결할 때도 잦았다고 한다. 클럽이 300개로 늘어난 지금은 직접 다 관리할 수 없어서 클럽마다 모임을 이끄는 파트너를 선발해 투입한다. 회원들의 만족도를 최우선시하는 '고객 경험' 담당 부서도 따로 만들었다.
트레바리 클럽 중에는 김상헌 전 대표,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 등 사회 각계 전문가들이 이끄는 곳들도 많다. 삼고초려를 해서 명사를 섭외하는 것도 윤 대표의 몫이다. 매번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찾아가 설득하기도 하고, 친분이 없는 이들에게는 소셜미디어로 대뜸 연락해 섭외하기도 한다.
사회 명사들 참여하는 독서모임은 더 인기 끌어
독서 모임이 열리는 아지트는 압구정 한 곳에서 안국, 성수까지 세 군데로 늘어났다. 이번에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하면서 올해 안에 강남역 인근에 기존 세 곳을 합친 곳보다 더 큰 규모의 아지트를 개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오프라인 모임 외에도 온라인으로도 고객을 더 확장할 수 있게 기술 관련 인력도 보강할 예정이다.
비슷한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없으니 경쟁자도 없는 것일까. 윤 대표는 "누군가 '주말에 트레바리 갈까, 넷플릭스 볼까'를 고민한다면 우리의 경쟁자는 넷플릭스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가치를 진정성 있게 풀면서도, 돈에 대한 현실 감각도 잃지 않고, 지금처럼 열심히 한다면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후 8달 동안 혼자 일했던 회사는 이제 20명이 일하는 회사로 커졌다. 직원 중에는 트레바리 유료 회원으로 참여했다가 아예 이직한 경우도 많다.
그는 "스타트업에서는 최고 연봉을 받는 직원이 누구인가보다 직원들이 받는 최저 연봉이 얼마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모든 직원에게 연봉 5000만원은 줄 수 있는 사업 규모와 모델을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투자를 받은 일이 결코 축하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을 받았으면 불려서 돌려주는 게 도의다. 내가 투자를 받을 만큼의 능력과 각오가 있는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우리가 그동안 잘해왔다고 앞으로 잘한다는 보장은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갈 수 있는 데까지 가야겠다 생각했고, 꽤 멀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