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남성은 “XXX아, 요금 주면 되지 않느냐. 그냥 가자”며 욕설을 퍼부었다. 전씨가 택시를 경찰서 방향으로 몰자 그는 운전대를 꺾으며 막았다. 택시가 멈춰 서자 그는 주먹으로 전씨의 얼굴을 수차례 가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가락을 전씨의 입 안에 넣고 꼬집어 뜯기도 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던 전씨는 꼼짝 못하고 10분 넘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전씨의 얼굴은 피범벅이 됐다. 이 남성은 폭행 후 도망갔다. 전씨는 “잇몸이 찢어져 병원에서 여러 바늘을 꿰맸고, 코피가 오랜 시간 멈추지 않았다.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면서 울먹였다.
최근 경기도 남양주 여성 택시기사 폭행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여성 택시기사에 대한 일부 남성 승객들의 폭언·폭행이 도를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여성 기사 5명 심층 인터뷰
폭행·성희롱·무임승차 사례 다양
서울에만 여성 택시기사 744명
“격별 설치, 피해 대처요령 교육”
불과 3~4시간 만에 5명의 여성 기사가 기자에게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이들은 “남성 승객에게 이유 없이 심한 언어폭력을 당해도 참고 목적지까지 가는 일이 다반사다. 무슨 짓을 할까 봐 겁이 나서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이들은 모두 성씨 또는 영문 이니셜을 요청하는 등 익명을 요청했다.
또 다른 여성 택시기사 B(50)씨는 “하루에 많게는 남성 승객 10명 정도가 ‘어, 여자가 운전하네?’라고 말하고, 이 중 일부는 음흉하게 훑어본다”고 토로했다.
40대 여성 기사 C씨는 지난해 12월 50대 남성 승객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그는 욕설을 하고 주먹으로 C씨의 어깨와 운전대를 툭툭 쳤다. 요금도 내지 않고 내리려고 했다. C씨는 “인근 경찰서로 가서 신고하고 블랙박스 영상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고 말했다.<영상 참조>
그나마 C씨는 증거자료가 있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폭행을 당해 전치 3주 진단을 받은 전씨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미해결 사건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차 안 블랙박스가 고장 나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상욱 한국교통연구원 대중교통센터장은 “일본·미국 등에선 택시 운전석 격벽 설치가 보편화돼 있다. 운전자 폭행을 예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기 때문이다”면서 “우리도 공간이 협소해진다고 불편해하지 말고, 격벽이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업계·승객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올해 택시 250대에 격벽을 시범 설치한다. 윤지연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택시기사는 남성의 직업’이란 정형화된 인식이 깔려 있는 가운데 밀폐된 공간에서 여성 택시기사들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면서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고, 여성 기사들에게 피해 시 대처 요령 등이 담긴 안내서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