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지난해 은행 4곳에 지원했지만, 모두 낙방했다. 재무설계(AFPK) 자격증을 따고, 동아리 회장·학생회 간부 등 대내·외 경험도 풍부하지만, '취업준비생' 신분을 벗지 못했다. 그는 "친한 친구 20여 명 중 취업한 사람은 4~5명뿐"이라며 "졸업식에 가도 졸업장만 받고 끝나기 때문에 10명 중 9명은 졸업식에 안 갈 것 같다"고 말했다.
불참자 늘어 '주인 없는 졸업장' 애물단지
취업난 여파…잡코리아 조사 "27% 안 가"
실제 이달 졸업하는 대학생 중 정규직 취업이 확정된 이들은 10명 중 1명(1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국내 4년제 대학 졸업 예정자 111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졸업식에 안 가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번 조사 대상의 27.2%가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졸업식 불참자가 많다 보니 졸업식장은 썰렁하기 일쑤다. 가족조차 부르지 않고 '혼졸(혼자 졸업)'하는 졸업생들도 적지 않다. 직장인 김단비(26·여)씨는 "지난해 가을 '코스모스 졸업'을 했는데 우리 과 졸업생은 절반밖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졸업식에 굳이 가야 하냐'는 분위기는 수도권 대학보다 취업 여건이 열악한 지방대에서 더 두드러진다는 분석이다. 전북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이강산(24)씨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선배 대부분은 졸업식 날 도서관에서 '열공'한다"고 했다. 고용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이씨 주변엔 졸업을 미루는 선후배들이 많다고 한다. 재학생 신분이어야 학교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소속이 없는 '백수'보다는 취업에 유리해서다.
이 때문에 '주인 없는 졸업장'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동국대 교직원 박소정씨는 "졸업장은 친구나 가족이 대리 수령하거나 우편으로 보내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찾아가지 않으면 버릴 수 없어 학과 사무실 등에 쌓아둔다"고 말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졸업식은 석·박사 졸업생이나 상을 받는 소수 학부생만 참석하는 의례적 행사로 축소됐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본부가 주최하는 졸업식도 외면받다 보니 단과대학이나 학과 차원에서 별도로 마련하는 행사도 줄었다. 이명숙 전주대 대외협력홍보실장은 "취업률이 거의 100%인 간호대에서만 따로 학위수여식을 갖는다"고 했다.
물론 "졸업식은 단순히 졸업장을 주고받는 행사가 아니라 사제와 선후배 간 석별의 정을 나누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자리"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이상민 한남대 컨벤션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제자들의 앞날을 응원하는 자리인데 정작 주인공들이 오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고석현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