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반도체 클러스터
정부의 반도체 클러스터(협력업무지구) 계획이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는 당초 반도체 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추진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경기도 기흥과 8㎞ 정도 떨어져 있는 용인 일대에 반도체 생산 공장(팹) 3개뿐 아니라 부품·소재·장비 업체 약 50곳을 함께 입주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청와대 보고 과정에서 ‘지역 균형발전론’이 더해지면서 당초 유력 후보지에 올랐던 용인은 그저 여러 후보 중 하나로 전락했고, 경기도 이천과 경북 구미, 충북 청주, 충남 아산·천안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수도권 vs 지방 사활 건 유치전
수도권 인프라·인력 강점 공세
지역선 수도권 규제 강화법 내
구미는 SK하이닉스를 유치할 경우 100만㎡ 규모 공장 용지를 무상 임대하거나 SK하이닉스가 공장 용지를 매입할 경우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양도한다는 입장이다. 공장 내 전기 시설,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고순도 공업용수, 상하수도 시설뿐 아니라 KTX 역사, 경부고속도로 연결도로도 건설해 주겠다는 방침이다. 박수원 구미시 홍보담당관은 “지방 산업이 붕괴한 현실을 고려해 반도체 클러스터는 비수도권이나 지방 공단에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 역시 기존 SK하이닉스 공장이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박명옥 청주시 투자유치과장은 “현재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 시설이 전부 들어오지 않은 SK하이닉스의 M15 공장 상황을 고려할 때 청주에 유치되는 것이 시너지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 선정에 아우성을 치는 이유는 명백하다. 최근 조선이나 철강, 자동차 등 국내 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서 이들 산업이 몰려 있던 울산·창원·마산 등의 부동산 가격은 바닥을 찍고 있고 실업률은 치솟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영남대의 한 교수는 “지방에 있던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면서 국가산업단지를 끼고 있던 구미와 군산, 광주, 울산, 포항 등의 도시들은 말 그대로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수출의 주력이자 세계시장 경쟁이 치열해 불안정성이 매우 높은 반도체를 각 지역에 골고루 배분하는 게 바람직한가에 대한 반론도 높다. 한태희 성균관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국가 경쟁력을 선도해 나갈 반도체 클러스터 입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과연 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지, 또 공장뿐 아니라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 우수 인력을 제대로 모아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