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공이 크지만 진보의 힘만으로 남북관계를 개선시켰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보수가 먼저 길을 열었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합의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은 노태우 정부 때 남북기본합의서에 반영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6·15, 10·4 남북 공동선언과 문재인 정부 때의 4·27 판문점 선언도 마찬가지다.
진보 정부만 남북관계 주도하면
보수·진보 싸움으로 답방 퇴색
박정희·전두환·노태우도 힘썼다
물꼬 튼 보수도 적극 참여해야
전두환은 1983년 북이 자신의 목숨을 노린 아웅산폭탄테러 사건을 저질렀을 때 군부가 보복하자고 했지만 꾹 참았다. 이듬해 수재가 나고 북이 쌀과 의약품 지원을 제안하자 예상을 깨고 받아들여 대화의 물꼬를 텄다. 정상회담을 제안하고, 남북 비밀회담 수석대표 간 핫라인도 열었다. 이성이 감정을 제압한 결과였다.
김일성은 1985년 전두환이 보낸 밀사인 장세동 안기부장이 북의 수재 물자 지원에 감사해 하자 “받는 것이 더 용감하지요.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받는 용기에 탄복했습니다”라고 했다. 이 무렵 구축된 박철언과 북측 한시해 라인은 노태우 정부 후반기인 1991년 말까지 42차례나 비밀리에 만나 꽉 막힌 남북관계를 뚫고 빛나는 성과를 거뒀다.
문재인 정부는 보수의 산고를 인정하고 함께 가야 한다. 북한도 그런 초당적인 접근법을 원하고 있다. 김정은도 지난해 4·27 정상회담 만찬에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오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야당·보수의 협조 없이는 어떤 화려한 합의문도 휴지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평생 좌파라고 공격받았지만 극우인 강인덕을 초대 통일부 장관에 기용해 보수의 공세를 차단했다. 그는 김정일과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뒤 김영삼 정부의 총리를 지낸 이홍구를 불러 “우리가 (1989년에) 합의한 통일 방안대로 하려고 애썼어”라고 했다. 초당적 합의 정신을 지켰던 것이다.
김정은의 용인술도 간단치 않다. 대남공작 총책인 군부 강경파 김영철에게 통일전선부장 감투를 씌워 대미 협상을 맡겼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사는 “만일 외교관을 앞세웠다면 어떤 결과에 합의해도 군부는 항복문서라고 반발했을 것”이라고 했다. 남쪽에서도 군인 출신 보수 대통령인 박정희·전두환·노태우가 앞장선 것은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한반도는 한 세기 이상 강대국의 놀이터가 돼 식민지로, 분단국으로 전락해 고통받았다. 이 판에 우리끼리 싸우면 북과의 대화도, 강대국과의 협상도 힘들어진다. 독일은 지난 세기에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다. 그런데도 세기가 바뀌기 전에 통일을 이뤘다. 보수와 진보가 하나가 돼 강대국을 설득한 결과였다. 우리도 체질을 바꿔야 한다. 문 정부 외교안보 라인에 이념과 배경을 초월한 실력자들이 중용돼야 한다.
30년 만에 찾아온 남북관계의 대전환기다. 집권 진보는 보수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야당과 보수도 자신들이 길을 열었던 남북대화를 조롱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합의 과정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김정은의 방남을 우울한 축제로 만들 순 없지 않은가.
이하경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