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에선 김경수 경남지사가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사법부와 재판장인 성창호 부장판사를 비난하는 민주당에 실망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그때' 한나라당의 모습과 똑같다는 말도 들린다.
여당, 판결 유불리 따라 사법부 흔들어
2010년 '강기갑·PD수첩' 무죄에
한나라당 "사법개혁 반드시 필요"
민주당, 김경수 유죄에 "사법적폐 청산"
이명박 정부가 막 3년차를 맞은 2010년 1월. 사법부가 2009년 미네르바 사건에 이어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공중부양 사건''PD수첩 광우병 보도' 등에 무죄 판결을 내놓자 한나라당은 이 대법원장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당내 사법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위원회는 두 달 뒤 변호사 출신을 포함해 대법관을 24명으로 증원하는 사법개혁안을 내놓았다.
지난달 30일 김 지사에 대한 유죄판결 뒤 민주당이 "사법 적폐의 보복 판결"이라 규정하며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사법 개혁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모습은 당시 한나라당의 패턴과 거의 유사했다.
정권이 교체되며 한나라당(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이 공수 교대만 했을 뿐 판결의 유불리에 따라 사법부를 공격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정치인들은 판결의 유·불리에 따라 사법부를 공격하는 안좋은 습관을 갖고 있다"며 "입법권을 지닌 여당의 비난은 실제 사법부와 판사 개개인에게 상당히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에서 "민주당은 '사법농단세력 및 적폐 청산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과 함께 사법부의 개혁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 부장판사가 참고인 신분으로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과 관련한 조사를 받았던 점을 상기시키는 듯한 논평이다. 성 부장판사는 2016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재직당시 형사수석부장에게 영장 관련 기밀을 전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민주당의 이런 모습에 법조계는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지나치다'는 말이 나온다. 특검 관계자는 "수사 때는 특검에 협박성 발언을 하더니 판결이 내려지자 사법부를 똑같이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여상원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정치 지도자들의 판결 불복 발언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며 "정치인들이 앞장서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하면 일반인들은 판결 결과를 아예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김 지사의 변호인단 구성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지사를 수행했던 것은 오영중 변호사지만 실제 재판은 판사 출신의 최종길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가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때부터 김 지사를 도운 변호인은 피고인(김지사) 입장에 경도돼 새로운 논리를 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성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쓰는게 문제였다면 변호인단이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거나 추가 증인 신청을 통해 성 부장판사의 인사이동 시기까지 선고를 미루는 방안을 검토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성 부장판사는 김 지사 재판 선고 이틀 뒤인 지난 1일 법관 정기인사에서 서울동부지법으로 전보됐다.
김 지사를 조사했던 허익범 특검팀의 박상융 특검보는 "이번 판결은 특검의 수사 내용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다. 정치권의 공격과 논평에 대해 일일히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허익범 특검은 정치권의 비판에 대한 입장을 묻자 메시지를 보내 "수사와 관련해 한쪽 당사자인 제가 법정 밖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