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제도는 1999년 당시 김대중(DJ) 정부가 도입했다. 총 규모가 500억 원(국비 지원 300억 원 이상)을 넘는 대형 사업에 대한 재정 투입의 경제성 확보와 예산 낭비 예방을 위한 취지에서다. 예타 면제 대상은 국가재정법 38조 2항 1~10호에 규정된 사업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번에 면제된 23건 중 18건(20조 5000억 원)은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이다. 주된 면제 근거는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 특정한 제10호 규정이다. 이 규정에서 중요한 점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면제 대상 선정 기준의 적정성(발전 정도와 형평성)과 긴급한 상황 대응이라는 시급성·특정성이 충족될 때에 한해 예타 면제가 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1999년 예타 도입 후 예산 절감 역할
원칙 없는 예타 면제는 예산 낭비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
변칙·탈법 막게 국가재정법 손봐야
먼저 예타 면제 원칙과 관련해 지역균형발전 측면에서 발전 정도와 형평성, 그리고 긴급한 상황대응 측면에서 시급성·특정성이 무시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전문가들이 배제된 가운데 정치권과 관료집단에 의한 시·도별 나눠먹기식 배분으로 면제 대상사업이 결정됐다. 예산 낭비 예방과 경제성 확보를 위한 최소한의 빗장마저 풀렸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는 원칙 파기이자 예타 제도의 무력화를 의미한다. 나아가 재정법 체계의 붕괴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아울러 예타 면제 사업선정 및 시행 이후 예상되는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업비 검증 부실 사례를 보자. 전남 F1 그랑프리는 당초 총사업비 7330억 원이었는데 8752억 원으로 1000억 원 이상 늘어났다. 이미 예타를 통과했던 사업 중에서도 의정부 경전철처럼 수요 예측을 뻥튀기해 결국 법원에서 파산 선고한 경우도 있다. 예타 면제 사업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전가된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에 따른 경기부양 목적으로 대규모 SOC 사업을 시행했다. 90여개의 공항과 고속도로를 무더기로 건설해 후유증이 심각했다. 수요도 없는 구간에 만든 고속도로에 차 대신 다람쥐와 소만 다닌다는 ‘다람쥐 도로’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예타 면제된 사업(24조1000억원 규모) 중 국비 등을 뺀 지방비(약 2조원) 부담을 놓고도 지자체 간에 상당한 갈등도 예상된다. 예컨대 창원 도시철도의 경우 6400억 원 규모의 예타 통과사업이었지만 각각 20%를 떠안은 경남도와 창원시의 지방비 부담 갈등으로 사업을 반납한 사례가 있다.
예타 제도를 도입한 1999년부터 2017년까지 예타 대상 사업(767건)의 36.7%를 부적합 판정해 국고 141조 원을 절감했다고 한다. 예타 제도를 제대로 시행하면 예산 절감 등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정치 논리에 따른 변칙과 탈법으로 예타 제도의 원칙을 깨고 제도를 무력화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국가재정법 제38조 2항 10호를 개정해 지역균형발전 측면의 예타 면제 대상을 발전 정도가 평균 이하인 분야 또는 지역으로 한정해야 한다. 긴급한 상황 대응을 위한 시급성과 특정성의 구체적 범위와 기준을 명시하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권경석 전 지방자치발전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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