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친지가 오래간만에 한자리에 모이는 설 명절. 그러나 전세계 20만여명에 달하는 한인 출신 입양아들에게 가족은 누구일까. 친가족을 찾은 이들도 있지만, 만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릴 적 양부모와 생김새가 달라 방황하고, 성인이 돼 뿌리를 찾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인 입양아 출신 감독이 메가폰 '사이드 바이 사이드' 다큐 입소문 입양아에게 시민권 부여 방안 시급
영화는 지난해 5월 제작됐지만 최근 콜로라도 공영방송(CPR)을 통해 관련 내용이 소개되면서 감동의 물결이 잔잔하게 퍼져나갔다. 현재 이 영화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 프로젝트(sidebysideproject.com)’ 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출생ㆍ입양ㆍ성장 과정에 대해 얘기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과없이 오롯이 영상에 담겼다. 사연은 저마다 달라도 가슴에 품은 질문은 한가지였다. ‘한국은 나에게 무엇인가.’
이들은 모두 양부모와 형제들과 다른 생김새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과 사투를 벌여왔다. A씨는 어릴적 백인 가정에 입양됐지만 양부모가 이혼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밤 기도하며 나는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신께 수없이 묻곤했다”며 “마치 거울속 내가 노란 괴물처럼 보였고, 자살 생각도 수없이 했다”고 말했다.
모리 감독 역시 카메라 앞에서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1960년 서울의 보육원에서 미국 콜로라도 덴버의 백인 가정으로 입양된 모리 감독은 “다른 입양아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자신의 삶과 의미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쪽지 한 장도 남지 않은 채 친부모에게서 버려져 입양기관으로 옮겨졌고, 미국의 한 백인 가정으로 오게됐다”면서 “가족은 날 사랑해줬지만 여전히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6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한국. ‘아동 수출국’이라는 오명까지 붙었지만, 클레이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 입양아들에 대한 사후 관리는 ‘빵점’에 가까웠다.
원망도 많이 했다. 모리 감독은 한국을 방문해 박물관 앞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어린 시절 너무나도 꿈꾸었지만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삶을 그 아이들이 살고 있었다”며 울먹였다.
그러나 모리 감독은 “입양이 더 다양한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며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칠 때면 입양아들이 자신의 삶의 경험에 대해 새롭게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 떠났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태어난 모국, 한국이 20만 입양아들에게 또 다른 가족이 되어 달라는 바램도 잊지않았다.
그에 대한 화답으로 최근 정치권이 한인 입양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해달라며 미 의회를 설득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은 지난달 29일 워싱턴DC를 방문, 제프 머클리 민주당 상원의원을 만나 미 의회에 계류중인 입양아 관련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했다. 머클리 의원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을 비췄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