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완전히 반대되는 생각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근대 정치라는 것은 이러한 법에 대한 최소주의적 정의가 끊임없이 확장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왜냐하면 권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세부적 절차를 미리 규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은 통치의 효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치를 복잡하게 만드는 의미가 있었고,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의 이상 또한 이러한 전제 위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정치의 사법화에 그치지 않고
생활 전 영역에 사법화 진행중
법으로 정치 문제 해결하려는
매혹은 물론 이해할 수 있지만
선거로 통제하는 정치인에게
정치를 맡기는 게 올바른 선택
이곳에서 어떤 결정이 옳았고 어떤 결정이 틀렸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법치주의(법의 지배)로 민주주의(다수의 지배)를 전면적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 혹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그리고 검찰)가 그 과정에서 지나친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됐거나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사실 탈권위주의 체제가 일반적으로 겪는 문제라는 점이다.
덧붙여 한국의 특수성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운위되는 ‘정치의 사법화(司法化)’에 그치지 않고, 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취지에 십분 공감하더라도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시행은 사법부가 어느 정도의 점심과 선물과 축의금이 공직자와 교육자들에게 적절한지를 결정할 부담을 지우며,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잠재적 ‘범죄자’의 풀을 압도적으로 늘려놓은 것만은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결국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했던 권위주의 시대의 현대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논란이 된 손혜원 의원 관련 사건도 결국 고소·고발로 이어지면서 검찰과 법원이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고 이해충돌과 지역활동을 가릴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검찰과 법원에 모든 결정을 게으르게 맡기고 기다리기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정치적 토론을 통해 손 의원뿐 아니라 모든 정치인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회피할 수 없게 된 이해충돌의 문제를 새롭고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기를 바란다. 더 주요하게는 불기소나 무죄 판결을 통하여 이들이 쉽사리 면죄부를 받게 되는 상황보다는 이들이 문제가 있다면 선거를 통해 철저하게 단죄되기를 바란다.
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매혹은 물론 이해할 만하다. 사법은 정치와 달리 분명한 해답을 비교적 신속하게 내릴 것이며 확실한 승자와 패자를 명확하게 구분해 줄 것이다. 또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을 단죄하고 이들의 권한을 박탈하여 전문적인 법률가들의 손에 넘기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최고의 법률가보다는 선거로 통제할 수 있는 최악의 정치인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믿는다. 법적 책임만 묻기에 정치는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이며, 법치가 정치를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