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의도 개입” “당연한 순서다”…둘로 쪼개진 사법부

중앙일보

입력 2019.01.25 00:05

수정 2019.01.26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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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24일 법원은 다시 쪼개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분노에 찬 규탄과 “당연한 순서다”라는 결연한 목소리가 판사들에게서 나왔다. 지법의 한 판사는 “법원에 정말 큰일이 났다”고 표현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바라보는 시선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법원 전체에 충격을 던졌다. 불구속 수사·재판 원칙을 검찰보다 중요시하는 데다 혐의가 구속 사유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 전 대법원장 의혹을 비판한 판사들조차 영장 기각을 점쳤다.

“미리 다 정해놓고 유죄 낙인 찍어”
“전직 수장이 책임져야 신뢰 회복”
“책임진다 했으면 구속 안됐을 것”
일각선 ‘김명수 책임론’ 제기도

그러나 구속 결과가 나오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 비판적인 판사들은 “우리 스스로 법원의 신뢰를 던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이 문을 닫아야 한다”며 “업무 수행 중에 일어난 일이고 해석 여하에 따라 아직 달라질 부분이 많은데 피의자의 방어권을 제한할 수 있는 구속 조치를 취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고법 부장판사는 “구속 사유 중 하나로 ‘증거인멸’을 들었는데 대법원장의 인품을 그 정도로밖에 안 보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고법 부장판사는 “국민들은 구속 자체를 유죄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공방의 여지가 있음에도 구속한 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죄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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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요소가 개입된 결과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미 위에서 다 정해놓고 한 거 아니겠나”라며 “법원이 살 길을 찾기 위해 양 전 대법원장을 최후의 희생양으로 바친 것”이라고 말했다. 고법의 한 판사는 “이제 양승태 대법원에서 판결이 났던 이석기(전 통진당 의원), 전교조, 민주노총 사건 관계자들이 재심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다”며 “처음부터 거기에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판사들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여권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이 ‘특별재판부’ 카드를 꺼내들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데 이어 양 전 대법원장도 구속됐다며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비판했던 판사들은 “정치적 의도로 해석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지법의 한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저지른 사안의 중대성을 떠나 사법부의 수장이 구속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하지만 더 걱정은 이번 구속이 정치적인 행위의 일환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부가 이번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양 전 대법원장을 ‘마무리 카드’로 택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지법의 한 판사는 “결과적으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전직 수장이 책임지는 게 신뢰 회복을 위한 가장 빠른 길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양 전 대법원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구속은 피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고위 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이 뒤로 빠져 있는 사이 임종헌 전 차장 등 다수의 자기 사람들이  ‘가지치기’되지 않았나”라며 “양 전 대법원장 스스로 자기를 지켜줄 사람들이 사라지도록 방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명수 대법원장 책임론’도 거론된다.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자기 손에 피 묻혔으면 김 대법원장도 이 사태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조직 내부 문제를 검찰 손을 빌려 처리한 것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무너진 신뢰를 세우는 데는 열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대법원장이 이를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예상했다면 지나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이후연·김기정·박사라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