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과 쌀, 레몬…. 베트남에서 아랍에미리트로 음식이 전해졌다. 조리장 없이 아시안컵에 출전한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향한 ‘구호 물품(?)’이다.
박항서(60)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20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알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승리해 8강에 진출했다.
선수 기 북돋우기 위해 음식 보내
박 감독 향한 베트남식 애정 표현
극적으로 16강 진출 이어 8강행
기자회견이 끝난 뒤 베트남 VTV 쾅피엣 기자는 “베트남 국민이 행여 선수들 입에 중동 음식이 맞지 않을까 우려해 현지 음식을 보내준 것”이라고 전했다.
이번 대회에 한국 대표팀은 조리장 2명이 동행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베트남은 조리장을 데려가지 못했다. 베트남 공무원 월급은 약 30만원 정도고, 지난해 베트남 1인당 국민총생산(GDP)은 2385달러(약 264만원) 수준이다. 하지만 베트남 국민이 박항서 감독과 선수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베트남 국민은 베트남이 지난해 1월 아시아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뒤 카퍼레이드를 할 때도 박 감독에게 치킨, 옥수수 등을 던져줬다. 박 감독은 “‘이게 나에 대한 베트남 국민의 애정 표현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이 16강에 진출하는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베트남은 지난 17일 3차전에서 예멘을 2-0으로 꺾고 조 3위(1승2패)를 기록했다. 이번 대회는 조 3위 6개국 중 상위 4팀이 16강에 진출하는데 지난 18일 E조의 레바논이 북한을 4-1로 꺾으면서, 베트남은 레바논과 승점·골 득실·다득점까지 동률을 이뤘다. 결국 베트남은 옐로카드 숫자까지 따져야 했다. 베트남이 레바논보다 옐로카드 숫자가 2개 적어 극적으로 16강행 막차를 탔다.
박 감독은 알 아인에서 3차전을 마친 뒤 고생한 베트남 선수들을 한국식당에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북한 식당밖에 없어서 결국 시내에서 스테이크를 먹었다.
베트남은 지난해 12월엔 ‘동남아시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스즈키 컵에서 우승했다. 그러나 아시안컵 1차전이 끝난 뒤 베트남 해설자 쯔엉 안 은고그는 “박 감독의 경기 운영이 너무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베트남 일간지 탄닌의 응구옌 비엣 기자는 “스즈키컵과 아시안컵은 수준이 다른 대회다. 이런 대회에서 박 감독을 비난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박 감독은 어린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놀라운 성과를 냈다”고 반박했다.
박 감독은 16강전을 앞둔 19일 기자회견에선 “한국에선 베트남을 ‘제2의 우리 팀’처럼 여기고 뜨거운 응원을 보내주신다고 들었다”며 “대한민국 국민까지 응원해주셔서 책임감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단상에서 내려와 한국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먼 곳까지 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두바이=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