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20여 년 전 한국과 중국의 위상이 역전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한국의 게임이 중국 대륙 시장을 휩쓸면서 전개된다. 2006년쯤 한국 정부가 파견한 필자를 만난 중국 문화부의 한 국장이 회의 중에 이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 시장 압도해온 한국 게임 산업
국내 빅3 모두 텐센트에 편입 우려
지난 10년간 규제로 일관해온 정부
게임업계 내부 성장동력도 고갈돼
중국 정부는 과거 ‘속국’처럼 얕보던 한국에서 만든 게임이 자국 젊은이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 이 국장의 솔직한 말처럼 몹시 경계하고 있었다. 청나라의 간섭을 받던 조선의 후예가 거꾸로 중국을 문화적으로 지배한다니 불편함을 느낄 만했을 것이다. 한국의 게임이 일개 산업을 넘어 한국과 중국의 문명사적 역전을 일으킨 주역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다. 한국의 게임은 드라마나 K-팝에 앞서 가장 먼저 중국을 문화적으로 압도한 당당한 주역이었다.
최근 한국 게임 업계 1위 기업인 넥슨의 매각설이 등장했다. 업계 1위 기업이 매각을 시도한다는 것은 게임산업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시그널로 인식돼 놀라움을 주고 있다. 유력한 인수자로는 중국의 텐센트가 거론되고 있다. 업계 1위인 넥슨이 텐센트에 매각된다면 게임업계에 주는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한때 중국은 물론 전 세계 게임산업을 견인하며 혁신의 대명사였던 한국의 게임산업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정책적 무능이다. 정부의 무능이란 규제 위주의 정책을 의미한다. 한국 게임이 내리막길을 걸어온 지난 10년은 규제로 일관한 암흑의 10년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의 게임 시간을 규제하기 위해 2011년 11월 셧다운(Shutdown) 제도를 도입했고 게임을 마약이나 술과 동일시하는 ‘4대 중독법’ 입법 시도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작년에 보건복지부가 추진한 게임의 질병코드 지정 시도 역시 게임 개발자들에게 절망감을 안겨줬다. 게임 개발을 마약 같은 중독 물질 생산으로 보는 나라에서 창의성이나 열정이 나올 수 있을까.
한국 게임산업이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내부의 성장동력이 고갈됐다는 점도 문제다. 이제는 양적 성장조차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작년 3분기 실적을 보면 게임 빅3 중 두 개 기업이 매출 감소에 직면했다. 엔씨소프트는 3분기 매출액 4038억원, 영업이익 1390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4%와 58%가 감소했다. 넷마블도 매출 5260억원, 영업이익 673억원을 기록해 역시 각각 9.6%와 39.8% 감소했다.
질적인 측면에서 성장동력이 고갈됐다는 것은 산업을 새롭게 혁신할 수 있는 동력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임사들은 기존 게임의 지식재산권(IP)을 모바일에 활용하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 새로운 형태의 게임이나 신규 IP 생성에는 소극적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게임업체, 특히 메이저 게임사들은 지극히 보수화됐다고 볼 수 있다.
해외시장에서 성장할 가능성도 제한적이다. 중국 시장은 규제로 인해 진입이 쉽지 않다. 중국 이외의 글로벌 시장은 성숙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한국 게임이 과거처럼 공격적으로 해외진출을 하기도 어렵다. 사면초가(四面楚歌)란 이런 경우일지 모른다. 이번 넥슨 매각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다만 매각이 성사되든 불발되든 그것이 한국 게임산업의 영화(榮華)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한국게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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