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하늘 아래 어린이와 청소년 등 100여 명이 하얀 인공눈 위에서 썰매를 타고 있었다.
이날 광진구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오후 3시 기준으로 ㎥당 141㎍(마이크로그램, 1㎍=100만분의 1g). ‘매우나쁨(76㎍/㎥)’ 기준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최악의 공기질을 보였다.
이 때문에 마스크를 쓴 채로 썰매를 끌고 가는 아이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반 이상은 마스크조차 쓰지 않고 썰매를 탔다.
딸과 함께 썰매장을 찾은 김모씨(50)는 “잠깐이라도 바람은 쐐야 하니까 나왔다”며 “마스크를 쓰면 괜찮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뚝섬눈썰매장 관계자는 “평소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온 것 같다”면서도 “미세먼지가 심해도 문을 닫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입장하는 문 앞에는 유아용 미세먼지 마스크가 비치돼 있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사람들은 10명 중 한 명도 채 되지 않았다.
9살 아들과 스케이트장을 찾은 허진희(41) 씨는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청정기 앞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하소연하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매우나쁨’보다 더 최악인 서울 공기
이날 서울의 초미세먼지(PM2.5) 일평균 농도는 오후 3시 기준으로 118㎍/㎥를 기록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175㎍/㎥까지 치솟기도 했다.
경기와 인천 역시 초미세먼지 농도가 각각 114㎍/㎥, 98㎍/㎥으로 ‘매우나쁨’ 수준을 기록했고, 전국 대부분이 올해 들어 최악의 공기질을 보였다.
부산과 대전, 세종, 충남, 충북, 광주, 전북에서도 이날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됐다.
“고농도시 취약계층 보호책 마련해야”
이 시설들은 대부분 민간업체가 지자체와 계약을 맺고 위탁 운영하고 있다.
눈썰매장을 운영하는 한 업체 대표는 “지자체 담당자가 매일 안전점검을 하러 오지만 미세먼지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가 직접 주최하는 야외 행사나 시설은 비상저감조치가 내려지면 중단 또는 축소하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자치구 별로 사정이 다르고 민간업체와 계약 관계가 있다 보니 대처가 다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나쁨’일 때는 유아 등 민감군의 경우 가급적 실내활동만 하고 실외 활동 시 의사와 상의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임종한 인하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초미세먼지는 자폐증, 주의력결핍 과잉장애 등 태아와 어린이 성장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아이들의 경우 아토피 같은 피부 질환까지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스크를 쓰면 호흡량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영유아들이 무리한 신체 활동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해관 성균관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고농도 상황에서 야외활동을 하는 건 간접흡연을 하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치명적이다”며 “아이들은 호흡량이 성인보다 많아서 미세먼지의 유해성분이 더 유입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고농도 발생 시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천권필·편광현 기자 fee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