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유니콘]"고삐 풀린 용 같다" 구글도 놀란 베트남 스타트업 붐

중앙일보

입력 2019.01.14 15:08

수정 2019.01.1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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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기업 13만개 생겨나는 베트남 르포
 
지난해 11월 29일 베트남 호찌민. 한국처럼 거리에서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흔드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베트남 차량호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아 택시를 불렀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인 '더 커피 하우스'에 들어갔다. 카페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볐지만,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 길게 줄을 선 풍경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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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도 주문은 앱으로 이뤄졌다. 자리에 앉아서 앱으로 원하는 음료를 고르고 모바일 결제를 하면 된다. 이 카페를 운영하는 시드컴(Seedcom)은 이런 모바일·IT 트렌드를 오프라인 유통 매장과 결합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베트남 IT기업이다. 현재 직원이 2만명이다. 
 
베트남 최대 상업 도시인 호찌민은 베트남에서도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지역이다. 최신식 초고층 건물에는 금융‧IT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이 몰려들고 있고 늘 인파로 북적인다. 
 
호찌민의 인구(2017년 기준)는 수도인 하노이(722만명)보다 많다. 2096㎢ 땅에 815만여 명이 사는데 비공식 인구는 1000만 명이 넘는다. 전체 면적의 6% 규모의 땅에 베트남 전체 인구의 10%가 모여 있다.
 

베트남 호찌민은 유럽풍 저층 건물이 곳곳에 있어 도시 전체에서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난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3년간 베트남의 GDP 연평균 성장률은 6.56%다. 산업생산증가율도 연평균 8.9%다. 하지만 같은 기간 인터넷 경제 성장률은 연평균 38%에 달한다(구글·테마섹 공동리포트). 특히 지난해 전자상거래 시장은 전년보다 50% 성장했다. 구글·테마섹 리포트는 베트남 인터넷 경제에 대해 "고삐를 풀어놓은 용과 유사하다"고 진단했다. 


베트남 정부가 2016년을 ‘국가 창업의 해’로 지정해 지원하기 시작한 이후, 인터넷과 창업에 불이 붙었다. 베트남 정부는 2016년 5월 ‘2025 베트남 혁신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제도’를 내놨고 지난해 1월부턴 중소기업지원법도 시행 중이다. 은행 대출 완화, 신용보증 제공, 법인세 감면, 지원 프로그램 전국 구축, 근로자 기본 훈련 과정 지원 등의 지원책을 쏟아냈다.
 

호찌민에는 자동차보다 오토바이 많다. 유럽풍 저층 건물 사이로 최신식 초고층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2018년 한해 태어난 기업만 13만개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는 창업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새로 등록한 기업 수는 12만6859개로, 전년 대비 15.2% 늘었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2018년은 이보다 많은 13만5000개의 기업이 생긴 것으로 전망됐다. 
 
윤보나 코트라 베트남 호찌민무역관 현지조사관은 “2017년에만 베트남 스타트업에 2억9100만 달러(약 3257억원)의 투자가 성사됐는데, 이는 2년 만에 투자 규모가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IT 분야는 탄탄한 수요를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베트남에선 6000만여 명이 인터넷을 쓰고, 3000만여 명이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IT 아웃소싱을 중심으로 IT산업이 커지면서 IT 개발자, 디자이너가 늘고 창업도 활발하다. 베트남 IT기업인 VNG의 리홍민 대표는 “베트남의 사업 환경은 매일 변하고 있고, 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매일 도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언론사인 브이엔 익스프레스(Vn Express)가 선정한 ‘스타트업 베트남 2018’에 선정된 톱5 기업이 모두 IT 업체다. 유학생과 대학을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엘라(ELLA·1위), 임대 방 관리 앱인 에이미(AMI·2위), 인공지능 기반 메신저 프로그램 이용한 챗봇 서비스인 봇 반 항(BOT BAN HANG·3위) 등이다. 
 
"IT 관련 기업 규제, 매우 단순해"
 
베트남 IT기업 시드컴의 딘 안 후안 대표는 “베트남의 기업 규제는 아주 간단하고 IT와 관련된 것은 더 단순하다”며 “창업하는데 정부가 특별히 자금을 대주는 식의 지원은 없었지만, 특별한 규제도 없어 마음껏 개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호찌민 전경

 
베트남 투자전문회사인 비비다이민(B.B.DAIMINH) 이영훈 대표는 “베트남 정부는 기업 하기에 투명하고 안정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데 관심이 있고 창업을 장려하지만, 어떤 역할을 하기보다 지켜보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차량호출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랩’이 베트남 운송 시장에 뛰어들 때도 별다른 제약이 없었다. 기존 운송 시장에 대한 위협으로 보기보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매개체로 보고 지켜본 것이다. 베트남에서 그랩은 차뿐 아니라 오토바이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일단 성장할 때까지 지켜본다
 
하지만 그랩이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의 동남아 사업권을 인수하면서 덩치가 커지자 베트남 정부는 경쟁법 위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베트남 경쟁법은 합병을 통해 시장 점유율이 30~50%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면 합병하기 전에 신고해야 하고, 이를 어기면 전년 매출의 10%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또 합병 후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으면 독과점으로 간주해 합병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때 제재하면 되니, 성장하기 전부터 미리 규제를 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찌민=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