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m84㎝, 몸무게 105㎏의 거구인 김민호는 ‘레슬링 키드’다. 초등학교 시절인 1990년대 WWF(지금은 WWE)에서 헐크 호건과 안드레 더 자이언트의 경기를 보면서 프로레슬링에 빠져들었다. 이왕표가 이끄는 WWA가 주관하는 레슬링 경기도 지방까지 따라가 모두 지켜봤다. 김민호는 “혼자 찜질방에서 자면서 경기를 보러 다녔다. 프로레슬링이 ‘(각본이 있는)엔터테인먼트’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빨이 뽑혀나가고, 피 냄새가 나는 걸 보면서 ‘진짜’ 격투기라는 걸 알았다. 사나이의 무도 세계가 정말 멋져 보여서 ‘꼭 레슬링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스무살이 되면 찾아오라’는 프로레슬링 선배들의 말에 그는 태권도·유도·씨름 등을 배우면서 레슬링 선수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WWA 극동 헤비급 챔프 올라
김일이 사용한 챔피언 벨트 둘러
필살기는 목·뒤통수 후려치기
“프로레슬링에 봄비 올 날 기다려”
레슬러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하루에 스쿼트 1000개, 푸시업 300개, 복근 운동 500회에 브릿지, 낙법 훈련까지 했다. 이것만으로도 모자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스파링을 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김민호는 “‘쇼인데 뭐가 힘들겠나’하는 생각으로 도장을 찾았다가 한 달도 안 돼서 그만둔 친구들도 많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건 결국 나 하나”라며 “일주일 중 일요일 하루만 쉬었는데 그날은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했다. 스승 노지심의 주선으로 6개월간 일본 레슬링 단체 NOAH로 유학을 떠난 뒤엔 청소, 설거지, 밥 차리기 등 궂은일을 하면서 레슬링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는 2년 만인 2008년 꿈에 그리던 데뷔전을 치렀다.
자연스럽게 국내 프로레슬러들은 생업을 위해 ‘투잡족’이 됐다. 낮에는 은행원으로 살다 밤에는 악역 레슬러로 변신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반칙왕’은 현실 그대로다. 김민호도 보안요원, 보험설계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김민호는 “지금은 제2금융권에서 대출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영업직이라 매일 출근할 필요가 없다. 회사에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일과 레슬링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김민호는 8개월이 지나도록 방어전을 치르지 못했다. 이왕표 WWA 회장이 지난 9월 담도암으로 별세한 뒤 국내 프로레슬링은 수장을 잃고 표류했다. 예정됐던 경기는 취소됐고, 체육관은 남의 손에 넘어갔다. 챔피언 김민호도 후배가 운영하는 체육관을 빌려 연습하는 처지다. 김민호는 “과거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강화하는 게 프로레슬링의 숙제다. 신임 홍상진 대표님을 중심으로 새롭게 팬을 찾아가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기믹만큰 중요한 건 승부를 결정짓는 ‘필살기’다. 김일은 ‘원폭 박치기’, 이왕표는 ‘플라잉 드롭킥’이 필살기였다. 김민호의 피니시 기술은 상대를 팔뚝으로 때리는 래리어트(상대의 목이나 뒤통수를 팔로 후려치는 기술)계열이다. 김민호는 “내가 무대에 등장할 때 나오는 피니시 이름와 등장음악이 ‘봄이여 오라’다. 한국 프로레슬링에 봄비가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