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4시 30분쯤, 서울중앙지법 418호 법정 피고인석에서 장영자(74)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두환 정권 당시 희대의 ‘큰 손’이라고 불리며 화려했던 과거와 달리 이날 장씨는 29년의 수감 생활을 보여주듯 군데군데 희어진 머리에 다소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1980년대 사채업계 '큰 손'
기자들에게 “기사 제대로 써라”
증인과 고성 지르며 다투기도
정장 입고 노트 준비한 장영자 “돈 없어서 국선 쓴다 하지 마”
그는 “보석이 기각돼서 변호인이 줄사퇴하고 선임 비용이 없어서 국선을 선임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억울함’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에 대한 항의를 먼저 한 것이다.
그러면서 장씨는 자신의 변호인인 강철구 국선 변호사에 대해 “재판장과 소통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국선을 해달라고 했고, 제가 구치소에서 접견해본바 매우 젊은 분이고 상당히 신뢰 가는 분이어서 선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사건을 수준 있는 로펌에서 맡는 것도 우스워서 그대로 하려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씨는 또 “제가 변호사한테 골동품을 팔아달라고 했다고 하는데 자제해달라”는 말도 했다. 앞서 ‘소문난 골동품 수집가’로 알려진 장씨가 경제적으로 시달리다 ‘가짜’까지 팔려고 했다는 데 대해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장씨는 남편인 고 이철희씨가 중앙정보부 차장이었던 만큼 부와 권력을 모두 가졌던 사람”이라며 “사기 혐의로 재판받는 게 알려지는 것보다 돈이 없다거나 가짜를 팔려고 했다는 등 자신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걸 더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장씨는 국선에서 사선으로 다시 변호인을 변경했다.
“장영자에게 속았다”는 증언 나오자 고성 질러
이씨가 “장씨에게 속아 154억원대 수표를 건네받았다”고 주장하자 장씨는 고성을 질렀다. 장씨가 이씨의 신상을 거론하며 "못 믿을 사람이다”고 하자 이씨가 흥분해 “치매가 온 것 아니냐”고 말하는 등 다툼이 벌어졌다.
재판이 길어지자 최 판사는 "오늘처럼 이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가급적 변호인이 질문하는 내용 외에 정말 안 되겠다 싶은 것 한두 개만 질문해달라"고 당부했다. 장씨가 “이 문제는…”이라며 말을 끊자 최 판사는 “지금 제 말을 안 듣는 거냐”며 장씨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이 끝난 뒤 장씨의 변호인은 기자와 만나 “장씨가 구속될 만큼 잘못을 하지 않았다”며 “검찰이 장씨가 풀려날 만하면 또다시 구속하는 걸 반복해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장씨는 고령 등을 이유로 법원에 보석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