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영부인이 여럿 바뀌셨지만 누구도 공연장에 오시진 않았다”며 너스레를 떠는 이들은 PC통신 시절 밴드를 결성, 유튜브가 대세인 지금까지 오로지 퀸만을 바라보며 수십 차례 공연을 했다.
97년 결성 영부인 밴드 "퀸은 종교이자 삶 그 자체"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은 세대 아우르는 음악의 힘 덕분
“영화에서 프레디가 라이브에이드 무대에서 오르기 직전부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어요. 무대에서 가끔 민망할 정도의 실수를 했던 프레디를 업신여기기도 했는데, 무대 뒤 아픔이 저렇게 컸구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더군요. 오해에 대해 사죄하고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멤버들은 영화의 몇몇 장면이 사실과 달라 눈에 거슬렸다고 했다. 프레디가 동료들에게 에이즈 감염사실을 털어놓은 때가 영화에서처럼 라이브에이드 직전이 아니라, 2년 후였다는 점 등이다. 베이시스트 안철민(45ㆍ외국계기업 한국지사장)씨는 “그럼에도 라이브에이드 전에 멤버들이 프레디를 지켜주려 노력하며 팀웍이 더 끈끈해졌다는 점을 영화가 잘 표현해줬다”고 말했다.
이들은 영화의 흥행에 대해 “모든 장르를 수용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퀸 음악의 힘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찬이 많은 식단처럼 장르가 다양한 퀸의 음악”(안철민)이 “세대를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며 10~20대들까지 두루 포섭했다”(신창엽)는 것이다. 드러머 박중현(44ㆍMBC 관현악단)씨는 화려한 무대 뒤 프레디의 아프고도 외로운 삶이 힘겹게 살아가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심경과 공명했다는 의견을 내놨다.
“요즘 젊은 세대는 SNS에선 다들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롭고 힘들잖아요. 그러면서도 버텨내는 프레디의 삶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 것 같아요. 영화를 본 뒤 퀸 노래 가사를 다시 음미하기 시작했는데, ‘너 자신의 삶을 살라’는 메시지의 곡 ‘Keep Yourself Alive’도 젊은이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더군요.”
브라이언 메이 연구가 김종호, 6펜스 동전 기타연주도 판박이
김씨의 퀸 사랑은 자신의 삶을 완성시켜 준 존재라는 점에서 조금 더 특별하다.
“어릴 땐 퀸을 가벼운 팝밴드로만 알고 좋아하지 않았는데, 20대 후반 회사동료의 추천으로 제대로 듣기 시작하며 빠지기 시작했어요. 공연장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고, 뱃속에서부터 퀸 음악을 들었던 아들은 지금 프레디의 열혈팬이 됐습니다. 퀸이 제 인생이 된 거죠.”
프레디보다 브라이언 메이를 더 좋아하는 김씨는 그와 관련한 상품은 모두 사들이는 수집광이다. 브라이언 메이의 라이선스 기타 10대를 비롯, 사인 앰프ㆍ이펙터 등 그가 사들인 악기만 해도 고급 중형차 한 대 값을 넘는다. 피크 대신 6펜스 동전을 사용하는 브라이언의 주법을 따라하기 위해 단종된 6펜스 동전을 수백개나 사모았다. 브라이언 메이가 2014년 공연차 내한했을 때 공항에서 만나 사인받은 기타는 그의 보물 1호다. 회사업무가 바쁜 와중에도 반차를 내고 공항에서 가발과 무대의상 차림으로 그를 맞았다고 한다. 그런 그를 멤버들은 ‘브라이언 메이 연구가’라고 부른다. 신씨는 “브라이언 메이의 사운드를 재현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하다. 손가락 움직임까지 똑같다. 관객들도 처음엔 가발 쓴 외모를 보고 웃지만, 기타 연주를 들으면 우레같은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보컬 신창엽, 프레디 머큐리 닮기 위해 하루 한끼 혹독한 다이어트
퀸 멤버와 가장 안닮은 베이시스트 안철민, "악플 담당 ^^"
“분장으로 감출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니까, 외모는 포기했어요. ‘너네가 무슨 퀸이냐’라는 악플이 다 제게 쏟아지죠(웃음). 사실 존 디콘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 덜 주목받았거든요. 그걸 위로삼아 버티고 있습니다. 하하.”
영화 흥행 이후 가장 많이 달라진 점으로 멤버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걸 꼽았다.
“어릴 때는 레드제플린 등에 심취해있는 친구들에게 ‘퀸을 좋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었어요. 이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죠. 커밍아웃이 아닌 , ‘퀸밍아웃’이죠(웃음).”(김종호, 신창엽)
“이젠 퀸을 연주한다는 한 마디로 우리 음악을 설명할 수 있어요. 우리 공연에서 10~20대가 열광하는 걸 보고, 퀸이 이렇게 사랑받는 밴드였구나 새삼 느끼게 됐죠.”(안철민, 김문용)
멤버들은 다 안다. 퀸 열풍이 언젠간 사그러들 거라는 걸. 뮤지컬 ‘위윌록유’(2008), 퀸 내한공연(2014년) 때도 퀸에 대한 관심이 달아올랐지만, 지속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유행이나 붐은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퀸 음악이 늘 가슴 속에서 뜨겁게 회오리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기에.
“퀸을 사랑했던 일상이 하루하루 쌓여 어느덧 20년 넘는 세월이 됐고, 앞으로도 평생 퀸과 함께 갈 것”이라는 안씨의 말에 김씨가 엷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눈가 주름에 연륜이 쌓인 그의 우상 브라이언 메이가 보였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