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벤처 창업 현황은 어떤가. 2000년 초부터 네 번의 정부를 거치는 동안 창업 활성화와 벤처 투자 생태계 조성 정책을 펴왔다. 문재인 정부도 벤처캐피탈 등 민간 자금을 벤처 투자로 유도하고, 코스닥시장을 활성화해 혁신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외환위기 이후 1999∼2000년 김대중 정부 때의 IT 벤처 광풍을 재현하겠다고도 했다. 실제 지난해 벤처 투자는 역대 최대 규모인 2조8629억원에 달했다. 문제는 투자 급증에도 제2의 벤처 붐은 먼 얘기인 듯싶다. 세계 유니콘 236개 중 우리나라는 3개(1.3%)에 불과하다. 코스닥지수도 하반기 이후 하락세이다.
미국·중국은 신산업 등장하면
‘선 허용, 후 보완’ 원칙 적용
한국도 획기적 규제 완화로
일자리 만들고 신산업 육성해야
미국·중국은 신산업에 대해 ‘선 허용, 후 보완’ 원칙이 적용된다. 일단 신산업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보고, 문제가 허용(tolerance) 범위를 넘으면 그때 규제하겠다는 거다.
둘째, 4차 산업혁명시대는 디지털시대다.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디지털시장을 만들어줘야 한다. ‘시장을 개척하고 매출을 올리는 건 기업이 해야 할 일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돼서 세계적으로 디지털시장을 통해 물건을 사고팔고, 직구와 역직구(온라인 수출입)가 늘어가는 때에는 디지털시장 육성과 이를 위한 정부 정책이 중요하다.
매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중국의 광군제(11월 11일)를 보라. 알리바바·징둥 등 중국 전자상거래업체들은 지난해 불과 하루에 약 60조원 매출을 올렸다. 알리바바는 티몰(天猫) 등 디지털시장을 앞세워 말레이시아·태국 등 동남아 수출 시장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7년 11월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국제공항 옆에 마윈 회장의 제안으로 디지털자유무역지구(DFTZ)까지 개설했다. 중국이 디지털시장을 키워나가고 국가적으로 디지털 G1(세계 초강대국)을 목표로 하면서 달성한 놀라운 성과이다.
우리나라엔 그나마 있던 G마켓조차 e베이에 팔리고 지금은 해외에 내놓을 만한 변변한 전자상거래업체 하나 없다. 향후 디지털경제 비중이 현재의 20%에서 10년 이내에 50%로 늘고, 이후 아날로그경제를 추월할 것이다. 디지털시장은 미래 경쟁력의 가장 강력한 인프라다. 정부가 정책 우선순위를 둬야 할 인프라의 핵심이다.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디지털시장을 육성함으로써 글로벌 브랜드가 없고 수출 유통망이 없는 중소 벤처기업들을 도울 수 있다. 중소 벤처기업들이 물건만 잘 만들면 아시아·유럽·남미·아프리카 등 시공간 제약 없는 모바일 디지털시장을 타고 순식간에 매출 주문이 폭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간의 혁신적인 ‘똑똑한 창업’이 자발적으로 폭발할 수 있을 것이다. 조만간 개인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금융권의 규제샌드박스도 본격화할 것이다. 정부의 보다 전향적이고 선제적인 벤처 활성화 정책이 절실한 때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핀테크지원센터장·리셋 코리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