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박천규 차관, 스님 찾아 환경부 기관 임원 사퇴 압력"

중앙일보

입력 2019.01.06 18:33

수정 2019.01.0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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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환경부 시무식에서 박천규 차관(오른쪽)이 산하 단체장들과 인사하고 있다. 박 차관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연합뉴스]

검찰에서 수사 중인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박천규 환경부 차관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산하기관 임원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환경부 산하기관인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이진화 전 상임감사는 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박천규 환경부 차관(당시 환경부 자연보전국 국장)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5월경 조계종 총무원 고위 관계자에게 찾아가 내가 사퇴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말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새로운 폭로
"박 차관 조계종 고위관계자 찾아가 압력"
이진화 전 국립공원 관리공단 감사 주장
박 차관 "국립공원 노조 동향만 말했다"

이 전 감사는 "스님에게 사퇴와 관련한 연락을 받은 뒤 황당해 박 차관에게 항의 전화를 하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어 "스님을 통해 그렇게 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고 하자 "박 차관이 '예우를 갖춰 7월 1일까지 그만두실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 전 감사의 법적 임기는 약 8개월 가량 남아 있었다. 
 
이 전 감사는 "내가 오랜 기간 불교 관련 비영리(NGO) 활동을 해왔던 것을 알았던 박 차관이 조계종 스님을 통해 압력을 가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사퇴를 요구하는 방식이 새롭고 치밀하다고 느껴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당시 박 차관과 만났던 조계종 스님은 "박 차관과 이 전 감사의 동향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은 있지만 사퇴와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해명했다. 
 

자유한국당 특별감찰반 의혹 진상조사단이 26일 공개한 문건. [자유한국당 제공]

당시 박 차관은 조계종 소속 사찰이 위치한 국립공원 관리를 총괄하는 자연보전국의 국장을 맡아 종단과의 접촉이 활발했던 상황이었다. 박 차관은 이후 기조실장을 거쳐 2018년 8월 환경부 차관으로 승진했다. 


이 전 감사의 주장에 대해 박 차관은 중앙일보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 "조계종 종단에게 이 전 감사에 대한 사퇴 요청은 한 적이 없다"며 "다만 (이 전 감사에 대한) 국립공원 노조 동향은 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퇴 요청은 정말 조심해야 될 사항"이라며 "이 전 감사는 노조가 고발했고 임기를 다 채운 뒤에도 몇개월 더 근무했다"고 반박했다.
 
박 차관이 언급한 노조 동향은 국립공원관리공단 노동조합이 이 전 감사를 폭언·폭행 혐의로 고발하고 사퇴를 촉구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중앙지검에 환경부 임원 사퇴 동향 문건 작성 의혹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박천규 차관 등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하는 모습.[연합뉴스]

국립공원 관리공단 노조는 새누리당 부대변인 출신인 이 전 감사를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규정하고 임기 초반부터 사퇴를 촉구했다. 이 전 감사는 2016년 9~10월 감사를 하던 공단 직원에게 강제 음주를 권하고 다른 직원들에겐 폭행·폭언 등을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전 감사는 환경부에 임직원 행동강령 위반에 따른 경고조치를 받았으나 강제 음주에 대해선 무혐의를 받았다. 이 전 감사는 "폭언 혐의 등에 대해서도 검찰 조사에서 사실 관계를 다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전 감사는 "이 문제에 대해서도 사퇴 압력 과정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당시 모든 사람이 나를 반대했다면 버티기 어려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박 차관의 반박대로 이 전 감사는 2년 임기를 채운 이후 약 6개월가량 더 근무했다. 실제 퇴사한 날짜는 지난해 7월 23일이었다.
 
이 전 감사는 "임기를 채운 뒤 조직을 떠나려 했지만 후임자가 오기 전에 자리를 비우면 고발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후임자가 온 당일에 통보를 받고 관사를 그날 바로 비워줬다"고 했다. 
 
이 전 감사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사퇴를 압박하는 방식에 당혹스러웠다"며 "임기를 채운 후에도 자리에 남아있던 날들은 매일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