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사진관]더럽고 둔하다고? 돼지는 인간의 수호신, 동반자

중앙일보

입력 2019.01.0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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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올해는 기해(己亥)년, 돼지띠의 해다. 
 
돼지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우선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돼지 같다'는 말은 최악의 험담이다. 돼지는 식탐 외에도 더럽고 게으르고 둔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돼지 꿈'은 행운과 복을 상징한다. 꿈속에서 돼지를 만나면 풍요로운 기대를 품게 된다. 우리에게 돼지는 어떤 동물일까. 돼지해를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이 열고 있는 「행복한 돼지」 특별전(12/19~2019/3/1)을 통해 '돼지'가 우리에게 어떤 동물인지 알아봤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위 작품에서 보듯이 '집'이라는 한자 '가(家)'는 '지붕(宀)' 아래 '돼지(豕)'가 사람과 함께 사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다. 사람과 이토록 가까운 돼지는 어떤 의미로 우리 곁에 존재해 왔을까. 국립민속박물관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우선 돼지는 인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 위 작품은 대한제국 시절 제작된 돼지 십이지번(十二支幡)으로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그림이다. 십이지신 중에서 해신(亥神)을 그렸다. 절에서 큰 행사를 할 때 잡귀의 침범을 막는 의미로 12방위 가운데 북서 북 방향에 걸었던 불화다. 철퇴를 들고 돌덩이 같은 근육을 불퉁거리며 춤을 추는 모습에서 더러운 돼지는 오간 데 없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인 박찬수의 작품이다. 십이지신 중 12번째인 돼지를 나무로 조각했다. 긴 창을 들고 늠름하게 선 모습이 금방이라도 창을 내려칠 듯 긴장감 넘친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조선 후기에 발간한 책 『서유기』에 그려진 저팔계다. 오른쪽 페이지의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바삐 오가는 것과 달리 땅바닥에 누워 여유를 부리는 모습으로 묘사돼있다. 그러나 돼지 저팔계는 삼장법사를 호위해 서역에서 불경을 가져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한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밀양 표충사 대웅전 추녀마루의 저팔계 잡상. 저팔계는 삼장법사, 손오공 다음에 위치한다. 『서유기』의 주인공들 형상으로 만든 잡상은 궁궐이나 사찰 건물에서 사악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경주 김유신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십이지신상 호석 가운데 돼지신을 탁본한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신(神)으로 인간을 수호했던 돼지는 속세로 내려와 인간과 함께 생활한다. 
 
신성한 제물이 되어 준 돼지는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제의(祭儀)에 사용되고 제기(祭器)에 반영되었다. 위 그림은 조선 시대 국가 의례에 관해 규정한 『국조오례의』에 실려 있다. 삶은 돼지고기를 담는 종묘 제기의 모양과 크기를 정한 내용이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종묘 제례에 사용된 삶은 돼지를 담는 제기. 돼지 머리 모양의 다리가 붙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가축은 민화에 잘 등장하지 않지만, 간혹 돼지 그림을 그려 가까이 두고 보기도 했다. 산에서 자라는 멧돼지를 그린 그림이다. 어금니기 튀어나왔고 다리를 짧고 가늘게 그렸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새끼 돼지를 따로 키우기 위해 짚으로 엮어 만든 우리. 위는 트여 있고 전면에 사각형의 출입구가 있다. 한 세대 전에 돼지는 개만큼 사람과 가까운 존재였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1960년대에 돼지 사육 농가를 위해 만들어 배포한 책이다. 돼지의 관리, 번식, 사료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돼지의 현대적 자화상은 무엇일까. 돼지띠의 '현대' 대표는 베이비붐 세대인 1959년 기해년 생이다. 돼지띠인 그들은 올해 2019년 환갑을 맞는다. 그들에게 '오늘'은 힘겨운 시절에 꿈꿨던 '미래'였다. 집집마다 돼지 저금통을 하나씩 두고 절약과 저축을 실천해 지금의 풍요를 이뤄냈다.    
 
1959년 달력을 보면 1월1일에 태극 모양의 도장이 인쇄돼있다. 당시는 양력설인 1월 1일이 공휴일이었다. 이해 음력설인 2월 8일(음력 1월 1일)엔 공휴일 표시가 없다. 음력설(구정)을 폐습이라 해 양력설(신정)을 쇠게 했던 시절이었다. 음력설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1985년이다. 명칭은‘민속의 날’이었다. 요즘과 달리 단 하루만 공휴일이었다. 앞뒤로 하루씩 더해 쉬는 날이 사흘이 된 것은 4년 후인 1989년이다. 이때 ‘설날’이라는 이름도 되찾았다. 12간지 별 띠는 음력이다. 올해 설날은 2월 5일이다. 정확하게는 이날부터 돼지띠다. 하지만 보통 양력으로 해가 바뀌면 12간지 별띠의 해라 하며 넘긴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돼지띠 당 사주 풀이다. 돼지띠의 사주는 좋다.
 
"위장과 폐가 건강하고, 일생의 풍류로 겉은 허술하나 속은 알차다. 본성이 정직하니, 재물이 불어서 부자가 된다. 심성이 온화하고 무던하니 하나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닫는다. 말이 순하고 행실이 돈실하니 모든 일이 태평하다. 나이 복이 많으니 나이가 들어서도 태평할 것이다."
 
무엇을 더 바라랴.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돼지 그림은 복의 상징이다. 동네 이발소마다 이런 그림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돼지를 더럽고 게으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지능도 높은 편이다.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연말연시에 벗들과 그림 놀이를 할 때 돼지가 출현하면 길조라고 생각하자. 
 

국립민속박물관 기해년 돼지띠 해 특별전. 최정동 기자

일본의 도예지역으로 유명한 시가라키에서 구운 멧돼지 상. 일본에서는 멧돼지를 띠 동물로 삼는다. 힘차게 생긴 멧돼지가 개운(開運)을 입에 물고 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돼지 꿈꾸고 운수대통하시기 바랍니다.   
 
최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