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을 욕보이는 문제에 가장 크게 부담을 느껴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법정의 김경수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신’을 유산 삼아 집권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요즘 정치는 노무현 정신과 동떨어진 듯하다. 계승해야 할 순수한 이상에서 멀어졌고, 극복해야 할 도그마화한 이념엔 갇힌 모양새다. 오랜 세월 지속된 콘크리트 고공 지지율에 취한 탓일까. 콘크리트가 짜개져 새해엔 지지율 30%대 추락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문 대통령은 딴 나라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다.
‘청와대 불법 의혹’ 수치스럽게 여겨
문 대통령, 노무현 정신 되새길 시점
오래된 일이라 기억에 가물가물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초, 최도술 비서관이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터지자 “그에게 잘못이 있으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국민들은 저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도덕적 신뢰만이 국정을 이끌 밑천”이라며 “나의 재신임을 국민에게 묻겠다”(2003년 10월 10일 기자회견)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임기 중 대통령의 진퇴를 국민에게 묻지 못하게 돼 있다. 그래서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정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지나칠 정도로 측근의 불법·비리에 민감했다. 법적 판단보다 훨씬 높은 도덕적 기준을 청와대와 스스로에게 들이댔다. 핵심일수록, 실세일수록 엄격했다. 거기에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사고방식은 끼어들지 못했다. 과도하게 책임지려 한 나머지 노무현의 정치는 위험하기까지 했다.
한국의 대통령들이 결벽증에 가까운 노무현식 책임정치를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한테도 찾아볼 수 없이 측근에게 관대하고 핵심일수록 보호하며 실세에게 침묵하는 언행을 보여온 건 사실이다. 지난 한 달 청와대 참모들의 불법사찰·블랙리스트·직권남용 의혹에 대한 방치에 가까운 대응이 구체적인 사례다. 이런 자세는 노무현 정신과 180도 어긋난다. 모든 국민을 공평하게 대해야 하는 국가 통치자의 모습으로선 부적절하다. 노무현과 문재인, 두 대통령의 정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재계의 한 인사는 “나는 보수적인 온건 우파지만 노 대통령이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노선의 차이를 떠나 부끄러움을 알고 책임지려 했던 노무현의 정치를 새롭게 보게 됐다는 얘기다. 우파 그룹 여기저기서 노무현 대통령을 재평가해야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8년 마지막 날의 풍경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