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사진관] 춥다고요? 얼굴 없는 천사들의 후끈한 사랑, 세밑 한파 녹였다!

중앙일보

입력 2018.12.30 12:32

수정 2018.12.3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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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기초생활수급 할머니가 기부한 2000만원 .사랑의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할머니가 2000만원을 기탁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 사랑의열매]

“지하주차장 입구에 종이상자 놓았으니 어려운 이웃에게 써 달라”, 돈뭉치와 돼지 저금통
“사무실 입구 쪽에 물건 하나가 있으니 잠시 나와보라”, 현금 봉투
“많이 후원하지 못해 이름 밝히기도 부끄럽다", 컵라면 
“따뜻한 겨울나기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쌀 66포대
“자신들 드러내지 않고 선행해 더욱 감동”
 
직접 농사지은 쌀, 사과도 ‘몰래 기부’
기부자들 하나같이 자신을 ‘절대로 알리지 말라’ 신신당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울산 등 전국 방방곡곡 기부 릴레이

“이름도, 사는 곳도 밝히지 말아 달라”

한파가 몰아닥쳤습니다.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찡할 정도입니다. 몸은 추워도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말 매서운 추위를 견딜만한 이유가 생겼습니다. 익명의 기부자들 덕분입니다.  
‘몰래 산타’들이 전국 각지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올 연말도 온 국민의 마음은 훈훈해집니다. 밤사이 몰래 놓고 간 산타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얼굴에 미소가 번집니다.
수년째 거액의 현금다발을 놓고 가는 사람, 금액이 적다고 미안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놓고 가는 것은 덩치가 큰 쌀더미에서부터 연탄, 컵라면, 사과, 돼지고기, 이불, 상품권 등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전달하는 방법 또한 다양합니다. 어떻게 남들 모르게 전달할지가 이들의 고민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첩보작전을 보는 듯합니다. 자신을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어린아이를 시켜 돼지저금통을 주민센터에 전달하기도 하고, 불시에 전화해 “(어디에) 돈을 놓아두었으니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는 말만 남기고 끊습니다. 거액을 우체통에 넣기도 합니다.
오백원 동전을 가득 담은 검정 비닐 봉투를 슬며시 면사무소 앞에 가져다 놓고 홀연히 사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부자는 “이웃돕기에 사용해 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철저히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이들을 우리는 ‘얼굴 없는 천사’,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살맛 나는 세상! ‘사랑하고 나누면 된다’는 사실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어 2019년 새해를 맞는 우리 모두가 행복합니다.  
12월 전국 방방곡곡에서 활동 중인 얼굴 없는 천사들의 사랑을 따라가 봅니다.

익명의 기부자가 남긴 5500만원과 손편지. 올해 1월 2억6천만원을 익명으로 맡긴 기부자가 최근 또 5500여만원을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사진 경남모금회]

#1.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 현금 5500만원
지난 14일 한 개인 기부자가 5534만 8730원을 경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익명으로 기탁했습니다. 이 기부자는 모금회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사무실 입구 쪽에 물건 하나가 있으니 잠시 나와보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내년에는 우리 이웃들이 올해보다 더 행복하고 덜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내년 연말에 뵙겠습니다”라는 손편지를 남겼습니다. 손편지 필체를 비교해 본 결과 올해 초 2억 6400만원을 기부한 사람과 동일인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지난 27일 오전 전북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서 직원들이 '얼굴 없는 천사'가 기부한 5만원권 다발과 동전이 가득찬 황금색 돼지저금통을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

#2. 전북 전주, 종이상자에 돼지 저금통과 돈뭉치...19년 째 
지난 27일 전북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40∼50대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주민센터 지하주차장 입구에 종이상자를 놓았으니 어려운 이웃에게 써달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습니다.
이 상자에서는 지폐 뭉치와 동전이 가득 한 돼지저금통이 나왔습니다.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내십시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이 적힌 종이 한장도 있었습니다.
지폐 5000만원(오만원권 1000장)과 돼지저금통에서 나온 동전 20만1950원을 합하니 5020만1950원. 그가 올해까지 19년간 놓고 간 돈의 총액은 6억834만660원입니다.
이 남성은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58만4000원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매년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씩을 이런 방법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설치한 '사랑의 온도탑'에 익명의 기부자가 현금 500만원이 든 편지봉투를 두고 간 것을 확인했다고 지난 24일 전했다. [ 사진 사랑의열매]

#3. 서울 광화문, 사랑의 온도탑에 500만원 봉투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광장 ‘사랑의 온도탑’에 익명의 기부자가 현금 500만원이 든 봉투를 놓고 사라졌습니다. 봉투에는 오만원권 지폐 100장이 담겼습니다. 누구인지 적지 않았고, 기부 동기를 담은 편지나 쪽지도 없었습니다.  
사랑의 온도탑에 익명의 기부금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2014년 12월 1000만원, 2016년 1월 300만원, 2016년 12월 500만원, 2017년 12월 500만원이 발견됐습니다.

충북 괴산에서 얼굴 없는 기부천사가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손편지와 함께 우체통에 현금 100만원을 쾌척했다. [사진 괴산군청]

#4. 충북 괴산 소수면, 현금 100만원 우체통에
12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 익명의 기부자가 지역 내 생활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써 달라며 현금 100만 원이 든 봉투를 소수우체국 우체통에 넣고 사라졌습니다. 봉투 안에는 ‘소수면 지역 내 소년·소녀를 비롯해 추운 겨울 생활이 어려운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편지가 있었습니다.

지난 전북 완주 상관면 사무소에 익명의 기부자가 놓고 간 오백원 동전이 가득 찬 검은 비닐 봉투.


#5. 전북 완주, 검은 비닐 봉투에 500원 동전이 한가득
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 24일 전북 완주군 상관면 사무소에서 검정비닐 봉투가 발견됐습니다. 민원인처럼 나타난 등산복 차림의 남성은 500원짜리 동전이 가득 든 비닐 봉투를 면사무소에 남겨놓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봉투 안에는 58만2700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신분을 밝히지 않은 기부자는 “이웃돕기에 사용해 달라”는 한 마디만 남긴 채 면사무소를 떠났습니다.

익명의 기부자가 지난 21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백미 10㎏ 66포를 경기 평택시 고덕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기탁했다. [사진 평택시청]


#6.경기도 평택, 쌀 66포대
경기 평택시에 거주하는 익명의 기부자는 지난 21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백미 10㎏ 66포를 고덕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기탁했습니다.
“추운 겨울을 보내게 될 취약계층의 따뜻한 겨울나기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좋은 곳에 써 달라”는 뜻을 전달했습니다.
#7. 전북 80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할머니, 평생 모은 돈  2000만 원 기부
“이름도, 사는 곳도 밝히지 말아 달라”
사랑의 열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익명의 한 할머니(88)가 2000만원을 기탁했다고 지난 23일 밝혔습니다. 할머니의 집은 17㎡ 남짓한 허름한 곳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까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몇 년 전 남편과도 사별했다는 할머니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며, 몸도 불편해 거동이 힘든 상황이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자식도 없고 돈 쓸 일이 없으니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장학금으로 써달라”며 1000만 원권 수표 2장이 든 봉투를 내놨습니다.

익명의 기부자가 종류도 다양한 컵라면을 경주시 용강동에 기부했다. [사진 용강동 행정복지센터]

#8.경북 경주시 용강동, 컵라면 10상자
지난 13일 한 익명의 기부자가 컵라면 10상자를 들고 경주시 용강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았습니다. 이 기부자는 경비 일을 하면서 회사로부터 지원받아 모은 컵라면 5상자와 자비로 구입한 5상자를 합쳐 모두 10상자를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많이 후원하지 못해 이름 밝히기도 부끄럽다”며 “본인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찾아오게 되었고, 추운 겨울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광주시 삼도동 행정복지센터에 익명의 기부자가 자신이 농사 지은 쌀을 기부 했다. [사진 광산구청]

#9. 광주시  삼도동, 직접 농사지은 쌀 20포대
지난 5일 광주 광산구 삼도동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1톤 트럭 한 대가 들어왔습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주차장에 쌀 20kg들이 20포를 내려놓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익명으로 기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동 직원에게 알렸습니다.  
익명의 기부자는 삼도동에서 평생 살면서 쌀농사를 짓고 있는 주민으로, 자신이 직접 농사지은 벼를 도정해 6년째 매년 쌀 400kg씩을 동 행정복지센터에 익명으로 기부해오고 있습니다.  
이 기부자는 “많진 않지만 내가 직접 지은 쌀을 이웃과 나눠 먹으며 좀 더 훈훈하게 연말연시를 맞고 싶었다”며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세종시 조치원 익명의 독지가가 기부한 담요.

#10. 세종시 조치원, 이불 72채
세종시 조치원읍 익명의 독지가가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는 취약계층을 위해 겨울이 불을 선물했습니다.  
익명의 기부자는 날씨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지난 4일 세종시 보건소를 찾아 지역의 불우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겨울 이불을 72채를 기증했습니다.  
이 기부자는 “운 겨울에 이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분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해시에 익명의 독지가가 보낸 겨울 이불과 전기 요 세트. [사진 김해시]

#11. 김해시, 겨울 이불, 전기요 500세트
김해시에도 지난 7일 실명을 밝히길 거부한 한 기업이 보낸 1억 원 상당의 겨울이 불과 전기요 500세트가 전달됐습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어려운 이웃들이 겨울나기가 더 힘들기 때문에 이불 세트를 기부하게 됐다”며 “어려운 이웃들이 추운 겨울을 보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1000만원 상당의 농협 상품권을 익명의 기부자가 울산 효문동 행정복지센터에 보내왔다. [사진 울산 북구청]

#12. 울산 북구, 농협 상품권 1000만원
지난 15일 40대 남성이 울산 북구 효문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이웃돕기에 써 달라며 1000만원 상당의 농협 상품권을 전달했습니다.
그는 다른 직원들에게 얼굴을 보일까 봐 행정복지센터 마당으로 복지 담당 직원을 불러내 상품권 꾸러미를 전달했습니다.
이 남성은 지난 2013년부터 매년 이맘때 쯤 효문동에 이웃돕기 상품권을 보내고 있답니다.
#13. 수원시  행궁동, 라면 50박스

지난 10일 익명의 한 기부자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라면 50박스를 행궁동에 기탁했습니다.  
기부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에 소외된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따뜻한 마음을 전달했습니다.

익명의 기부자가 경북 경산 자인면에 돼지 2마리분의 고기을 보내왔다. [사진 지인면]

#14.경북 경산 자인면, 돼지고기 2마리분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60대 기부자가 2013년부터 6년째 매년 연말 경산시 자인면사무소를 찾아가 돼지 2마리분의 고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부자는 지난 10일 잘 손질해 봉지에 담은 돼지고기 3상자(시가 160만원 상당)를 자인면사무소에 맡기고 사라졌습니다. 2016년 연말엔 돼지고기와 함께 쌀 10kg짜리 40포대를 놓고 가기도 했습니다.

#15.경남 밀양 청도, 사과 33상자
지난 4일, 밀양시 청도면 행정복지센터에는 사과 33박스가 도착했습니다. 이름을 밝히기 원하지 않는 기부자가 관내 복지대상자에게 전달해 달라며 본인이 직접 농사지은 사과를 기부한 것입니다.
익명의 기부자는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 요즘 저소득계층 대상자들이 맛있는 사과를 먹으며 마음이라도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직접 농사지은 사과를 기부한다”고 밝혔다
#16. 광주시 월곡1동, 컵라면 97상자
지난 22일 광주 광산구 월곡1동 행정복지센터로 1톤 트럭이 들어왔습니다. 트럭에서 내린 한 유통회사 직원은 컵라면 상자 97개를 사무실에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누가 라면을 보냈냐”는 질문에 유통회사 직원은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라”며 “‘어려운 주민에게 고루 나눠달라’는 당부가 있었다”고 밝히고 복지센터를 떠났습니다.  
상자에 담긴 컵라면은 모두 1152개. 국내 2개 회사가 만든 제품으로 품목이 다양했습니다. 
기부자의 배려가 따뜻함을 더해줍니다.
 
변선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