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한 철강노동자의 집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 속에는 한 소년이 하늘 향해 팔을 벌려 흩날리는 눈을 반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코너를 돌면 불이 붙은 통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가 보입니다. 소년이 눈처럼 반긴 것은 사실 불에 탄 재였던 거죠.
#얼굴 없는 거리의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당하다
[후후월드] 2018년 세계 미술판 뒤흔든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
그가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파괴한 이유는 아마 이런 것일 테죠. ‘돈 있는 사람들끼리 경쟁해 미술품의 가치를 올리는 경매라는 행위, 나는 반댈세!’ 길거리 화가에서 시작해 설치미술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뱅크시는 늘 이런 예측 못한 사건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요. 이에 대한 당혹감과 경의를 표현하는 말로 ‘뱅크시당하다(Banksy-ed)’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경매가 끝난 후 소더비의 수석 디렉터 앨릭스 크란크칙도 말했죠. “음. 우리가 뱅크시당했군요(We’ve been Banksy-ed).”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몇 차례 체포를 당하면서 그는 짧은 시간에,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궁리하다 ‘스텐실 그래피티’를 시작했다고 하죠. 스텐실이란 종이 등에 그림을 그려 구멍을 낸 후, 그 위에 스프레이를 뿌려 완성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정교하고 위트가 넘치는 그의 스텐실 그래피티는 금세 알려졌고, 90년대 후반에는 이미 런던과 브리스톨에서 주목받는 스트리트 아티스트가 됐습니다.
당시 유럽에서의 그래피티는 이미 60~80년대의 에너지를 잃고 거리를 더럽히는 아마추어들의 일탈행위로 취급 받고 있었는데요. 의미 없는 그림에 자포자기의 낙서를 남기는 기존 화가들과 달리, 뱅크시는 사회 이슈의 중심으로 들어가 자신의 생각을 폭발력 있게 전하는 도구로 그래피티를 이용했습니다.
2005년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 그림으로 거대한 구멍을 뚫어버렸죠. 지난해에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도버항의 한 건물 벽에 유럽연합(EU) 깃발에 있는 별 12개 중 1개를 깨부수는 사람의 그림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쇼핑 카트를 미는 원시인 #경악의 놀이공원
2015년 만든 ‘디즈멀랜드(Dismaland)’는 더 충격적입니다. 영국 휴양지인 웨스턴 슈퍼메어 해안에 한 달만 개장했던 이 놀이공원은 ‘디즈니랜드’의 악몽 버전이었죠. ‘꿈과 환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과 고통의 세계’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는데요.
입구에 들어서면 무너져 가는 으스스한 신데델라의 성이 등장하고요, 사고로 뒤집힌 호박 마차에서 튕겨 나온 신데렐라가 피를 흘리며 죽어갑니다(이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을 패러디한 작품이죠). 범퍼카에는 저승사자가 기다리고 있고, 신밧드가 있어야 할 보트에는 슬픈 얼굴의 난민들이 타고 있는 식이었습니다.
#뱅크시를 찾아라 #우리는 모두 뱅크시다
현재로서 뱅크시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두 명으로 좁혀지고 있습니다. 2008년 영국 데일리메일은 “브리스톨 출신의 거리예술가 로빈 거닝햄(45)이 뱅크시다!”라는 보도를 합니다. 런던 퀸 메리 대학 범죄학자들이 연쇄 범죄자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지리적 프로파일링’을 사용해 분석한 결과, 거닝햄의 이동 경로와 뱅크시의 작품 위치가 상당 부분 겹쳤다는 거죠. 또 하나는 브리스톨에서 결성된 일렉트로닉 밴드 ‘매시브 어택’의 멤버 로버트 델 나자(52)가 뱅크시라는 설입니다. 델 나자는 “우리는 모두 뱅크시다(We are all Banksy)!”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죠.
#쓰레기통의 사랑 #500배 오른 집값
뱅크시는 돈으로 환산 되는 예술을 비판하기 위해 ‘사건’을 벌이지만, 그럴수록 작품의 경제적 가치는 올라갑니다. 영국 노퍽 지역 뱅크시의 그림으로 뒤덮인 이동 주택은 구입 당시보다 500배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고 합니다. 10월 소더비에서 찢어진 그림 역시, 소동 덕분에 가치가 더욱 치솟을 것으로 미술계는 보고 있습니다. 찢어진 그림은 ‘쓰레기통 속의 사랑(Love is in the bin)’이라는 새 작품명을 얻었고, 낙찰 받은 여성은 훼손된 그림을 그대로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분명한 건 누구도 상상치 못한 방식으로 시대를 고발하는 그의 이벤트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고 있다는 겁니다. 2019년엔 누가 또 어떤 방식으로 ‘뱅크시 당할’ 지, 기대됩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중앙일보 Quiz
Q1 : 지난 10월 소더비 경매에서 낙찰 직후 찢겨나간 뱅크시 작품의 제목은?
정답 : 2번 풍선과 소녀 ( 약 15억원에 낙찰된 이 그림의 제목은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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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 뱅크시가 2005년 대영박물관에 몰래 갖다 놓은 돌에 그려진 그림은?
정답 : 3번 쇼핑카트를 미는 원시인 ( 이 작품은 대영박물관의 로마관 석조 미술품들 사이에서 발견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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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 2015년 뱅크시가 '디즈니랜드'의 악몽 버전으로 만든 놀이공원의 이름은?
정답 : 4번 디즈멀랜드 ( 디즈멀랜드(Dismaland)는 '음울한' 이라는 뜻의 'Dismal'과 'Disney land'의 합성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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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 '진짜 뱅크시'로 거론되자 "우리는 모두 뱅크시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은?
정답 : 2번 밴드 ‘매시브 어택’의 로버트 델 나자 ( 로버트 델 나자는 브리스톨 출신의 뮤지션인 동시에 그래피티 아티스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