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은 이틀 뒤 영국 일간지 ‘더 선’에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기사의 핵심은 미첼 의원이 ‘플렙스(plebs)’라는 단어를 사용해 다우닝가 경비 담당 경찰관에게 폭언했다는 것이었다. 이 단어는 우리말로 ‘평민’ 또는 ‘상것’에 해당한다. 미첼이 경찰관에게 했다고 보도된 말을 번역하면 “당신들이 나라를 위해 큰일 한다고 착각하지 마, 미천한 신분 주제에” 정도가 된다.
경찰관에게 폭언한 영국 집권당 원내대표는 사임
‘공항 갑질’ 같은 일 때문에 청년도 집권층에 실망
당시 영국인들은 경찰관 신분 비하 발언을 했느냐 여부에 주로 관심을 보였는데, 내 눈길은 그것보다 경찰관과 미첼의 행동에 더 꽂혔다. 경찰관은 거물급 정치인에게 경비 매뉴얼대로 차량이 오갈 때 사용하게 돼 있는 정문을 열지 않았고, 미첼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 원칙이 지켜졌다는 게 놀라웠다. 추후 공개된 폐쇄회로 TV 영상(소리는 없다)을 보면 미첼과 경찰관이 대치한 시간은 약 20초다.
누구에게나 공항은 긴장을 유발한다. 짜증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여권이나 신분증을 잘 챙겼는지 반복해 확인하게 되고, 가방에 넣은 보조 밧데리 같은 물건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한다. 몇몇 절차가 자동화된 덕에 성가신 일이 줄었지만 여전히 여러 차례 줄을 서야 비행기 좌석에 앉을 수 있다.
신분증 확인이나 보안 검색은 공항이나 항공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탑승객의 안전을 위해 하는 일이다. 그래서 다들 인내력을 발휘하며 담당자의 지시에 따른다. 원칙이 무너지면 구멍이 생기고, 테러범은 그런 허점을 노린다. 200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에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미국 보스턴공항에서 정밀 몸수색을 당했다. 금속성 물체를 모두 제거했는데도 탐지기가 경고음을 울렸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올림머리를 하기 위해 꽂은 머리핀에 있었다. 24개의 머리핀을 찾아 빼내느라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수행원들은 당혹해 하며 안절부절못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원칙대로 해야 누구나 안심하고 비행기를 탈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 당시 연합뉴스의 보도 내용이다.
김 의원은 “전에는 신분증을 꺼내지 않고 보여줘도 됐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조사해 봐야 한다. 스마트폰 케이스 속에 있어 얼굴 사진이 5분의 1쯤은 보이지 않는 상태로 신분증을 제시해도 문제가 없었다면,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인 그가 먼저 허술한 보안 절차를 문제 삼았어야 했다.
집권 세력의 인기는 나날이 줄고 있다. 특히 등을 돌리는 20대가 많다. 마케팅 전문가 임홍택씨가 쓴 책 『90년생이 온다』에는 20대의 특징이 간단·재미·정직, 세 가지로 표현된다. 그들 눈으로 보면 김 의원은 신분증 꺼내는 간단한 일을 안 하려고 갑질을 하고, 음모론을 제기하며 ‘병맛’의 해명을 하고, ‘아들뻘’ 운운하며 진정성 안 느껴지는 사과를 한 전형적인 ‘입 진보’다. 이러니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안 떨어질 수가 없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