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오염 논란 봉화 석포제련소
생각보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할 것이란 짐작은 일단 어긋났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연기가 아니라 수증기란다. 그러나 공장 바로 뒷산 말라 죽은 소나무들은 이곳이 환경 논란 지역임을 실감케 했다. 서울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공장 주변의 첫인상이다.
생산량 세계 4위, 아연 자급 기여
환경오염 논란으로 수년 째 몸살
폐수 사고로 20일 조업정지 명령
업체 “6개월 문닫으란 거냐” 반발
시민단체·행정기관 전 방위 압박
관련기관 등 올해 88차례나 방문
결정적 사건은 올 2월 터졌다. 토요일 아침, 흰색을 띤 물이 공장 앞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주민이 신고했다. 폐수처리장 배수펌프가 고장 나면서 정화용 미생물이 섞인 물 70t이 침전조에서 흘러넘친 것이다. 봉화군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기준치 10배의 불소, 2배의 셀레늄이 검출됐다. 이틀 뒤 월요일, 행정 기관의 집중 점검이 실시됐다. 불소처리 공정 침전조 벽에서 물이 새 폐수 0.5t이 공장 안 토양에 배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경북도로부터 조업정지 20일 명령이 떨어졌다. 제련소가 과징금이나 벌금 처분을 받은 적은 있으나, 공장을 세우라는 처분은 처음이다.
영풍 측은 “오염물질 유출 책임은 통감하지만 처분이 지나치다”고 항변했다. 조업정지 대신 과징금 처분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박영민 제련소장(부사장)은 “화학 공정 특징상 20일 조업 중지를 위해선 전후 6개월 가까이 생산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에 전해액 같은 화학물질을 옮겨야 하고, 가동 재개 후엔 공정 안정화가 필요해 이 정도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조업정지가 현실화되면 국내 아연의 자급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북도청 강병정 환경지도팀장은 “관리 부실이 실제 사고로 이어진 점, 과거 환경 관련 적발 전력 등을 고려해 내려진 결정”이라고 말했다. 영풍은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하자 다시 행정소송을 냈다. 이 과정에서 석포제련소에 대한 환경단체의 압박은 더 강해졌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생태보존국장은 “석포제련소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수 십건의 불법행위를 한 것은 환경개선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라며 “공장을 옮기거나 닫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 주장에 석포면 주민은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에겐 공장 이전·폐쇄가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임광길(61) 석포면 현안대책위원장은 “면 주민 2200명 중 80% 이상이 제련소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생업을 하고 있다”며 “환경 논란이 있긴 하지만, 공장 문을 닫을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시민조사단’ 버스 순례에 참가한 한 회원이 주민을 두고 ‘말 잘 듣고 길들여진 개’라고 표현한 시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이 시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정수근 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지역경제에 대한 우려는 인근 강원도 태백시에서도 제기됐다. 제련소 직원 1200명 중 400명 정도가 태백시민이다. 태백시 의회는 제련소 조업 정지 명령에 대해 “주민 정주 기반이 무너지고, 인구유출과 지역 공동화를 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석포제련소 문제는 국회 환경노동위에서도 수년째 단골 이슈가 되고 있다. 조명래 환경부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개인적으로는 석포제련소가 과연 그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자문하고 있다”며 “공장 폐쇄나 이전 조치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원내 인사는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강효상 의원이다. 강 의원은 가칭 ‘대규모 오염시설 이전 지원에 관한 한시적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작 봉화군을 지역구로 둔 같은 당 강석호 의원이 환경단체와 주민 사이에서 말을 아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풍 측은 “공장 이전은 사업을 접으라는 이야기”라는 입장이다. 박영민 소장은 “제련소 특성상 시설을 뜯으면 고철이나 다름없게 돼 완전히 새로 지어야 한다. 2조~3조원이 나 드는 비용도 문제지만, 환경단체나 주민 반대로 국내에서 마땅한 부지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영풍은 2021년 12월 31일까지 받아야 하는 사업 재허가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 환경부는 대기 수질 폐기물 등으로 나뉘어 있는 기존 환경시설 인허가를 통합한 ‘통합환경관리제도’를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원래 취지는 ‘절차 간소화’지만, 환경단체와 정부·정치권의 압박 속에서 오히려 족쇄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것이 영풍 측 우려다. 제련소의 외부인 방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설 개보수를 강화하는 것은 대응책의 일환이다. 제련소 측에 따르면 올해 도청·군청·환경부·지방환경청·환경공단·환경단체에서 공장을 방문·점검한 횟수는 88차례다. 매년 10차례 정도에서 지난해 40여 차례로 늘더니 올해는 곱절이 됐다. 영풍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높아진 환경 눈높이에 다소 둔감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과도한 ‘조리돌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