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마크]사퇴당한 '사퇴요정' 이은재 "다음 총선 당연히 출마"

중앙일보

입력 2018.12.23 06:00

수정 2018.12.2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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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재(66·재선) 자유한국당 의원의 별명은 ‘사퇴요정’이다. 국회에서 장관이나 인사청문후보자에게 수시로 “사퇴하세요!”라고 쏘아붙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 의원이 지난 15일 당 조직강화특별위로부터 당협위원장(서울 강남병) 배제 선고를 받았다. 이번엔 본인이 사퇴를 당하게 된 셈이다. ‘강세 지역구 안주’가 당협위원장 배제 사유라고 한다. 이에 이 의원은 “매일 새벽 산책로에서 주민들을 만난다. 이젠 마스크와 모자를 쓴 주민들도 걸음걸이만 보면 누군지 알 정도다.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이 의원을 21일 밀착마크했다.

21일 오전 9시, 이 의원은 봉은사를 찾았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동지(22일)를 맞아 팥죽 나눠주기 행사에 쓰일 새알을 빚기 위해서다. 50명 남짓한 신도들 가운데 이 의원도 장갑을 끼고 앉아 밀가루 반죽을 쥐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주민 오모(59)씨는 “(이 의원을) 지역행사에서 자주 본다. 국회에선 정부를 비판하는 야성을 보여주고, 지역에도 열심히 오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당협위원장 배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당 조강특위가 당협위원장에서 배제시켰다.
굉장히 억울하다. 이번 6‧13지방선거에서 한국당에서 서울 시의원 당선자가 딱 3명 나왔다. 그 중 두 명이 우리 지역구다. 지난 총선에서 내가 서울 전역 최다득표를 했다. 이번 당무감사에서는 거의 만점을 받은 걸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정이 나왔다. 괴롭지만, 선당후사 정신으로 표현은 안 하고 있다. 보수와 당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 나 혼자의 어떤 희생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
 
‘분당 책임’, ‘강세지역구 안주’ 항목에 해당된다고 하던데
탈당파 중에 제일 먼저 한국당에 입당했다. 복당의 물꼬를 텄다. 강세지역에 안주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다. 모든 중요한 지역행사에 빠진 적이 없고,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싸워왔다. 당무감사위원들이 이렇게 지역관리를 잘한 사람이 없다고 극찬했다. 원칙과 기본이 안 돼 있는 결정이었다. 친박계 몇 명, 복당파 몇 명 이런 식으로 계산해서 배제한 게 아닐까 싶다.
 
원유철·윤상현 의원 등 당협위원장에서 배제된 중진 의원들이 반발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우선 원칙과 기본이 없는 이 결정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느냐’란 판단이다. 또 다음 총선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동안 정치 상황에 여러 번 회오리가 칠거다. 그래서 심한 반발이 없는 거다.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동지맞이 팥죽 나눠주기 행사에 쓰일 새알을 빚고 있는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

 
이 의원은 2008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본회의장에서 멱살을 잡으며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으로 일약 인터넷 스타가 됐다. 최근에는 예산 심사 과정에서 ‘겐세이(견제)’ ‘야지(야유)’ ‘뿜빠이(분배)’ 등 잦은 일본어 표현 사용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예산심사 중에 일본어 표현을 자주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처음엔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다른 의원이 먼저 ‘야지’라는 말을 썼다. 그 발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나도 썼다. 그런데 화살이 나에게만 왔다. 두 번째는 예결소위를 할 때였는데, 언론에 회의가 공개된 줄 모르고 무의식중에 그런 표현을 썼다. 사실 지금은 세계화 시대다. 일본어 표현만 지적하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일본에서 연간 1200명씩 우리나라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 언론에서 그런 발언이 문제로만 비춰지는 건 오히려 청년들에게 피해가 될 것 같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일본어를 쓰지 않고 각별히 조심할 것이다.
 
이 의원은 ‘사퇴요정’이라는 별명에 대해 “관료들의 실정을 보면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최근 “사퇴하세요”를 외치고 싶은 인물로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꼽았다.


왜 ‘사퇴하세요’란 말을 자주 하나
2016년 국회 교문위에서 당시 유성엽 위원장이 자그마치 6000억 원의 누리과정 예산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국회선진화법이 있는데 어떻게 상임위원장이 법을 날치기 통과 시키나. 그래서 사퇴하라고 외쳤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에게도 사퇴하라고 했다. 그땐 말 대신 플래카드를 들었다. 교육부 장관이 교육 현실에 맞지않는 정책을 내세워서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이 김 후보자에게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에도 꼭 사퇴하라고 하고 싶은 인물이 있나
가장 책임 져야하는 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다. 비핵화의 아무 진전이 없고, 우리만 계속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대북 문제를 담당하는 장관이 이렇게 아무 업적이 나오지 않으면 책임져야 한다. 각성하든지, 능력이 안 되면 그만두든지 해야 한다. ‘목구멍 사건’은 또 어떤가. 우리 재벌 총수가 북한에 가서 어떻게 그런 말을 듣고 오나. 통일부 장관은 조금 늦었다고 시계까지 욕을 먹었다. 정식국가도 아닌 반국가단체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건 수치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라고 정의하는 건가
그동안 북한에서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테러를 저질렀나. 또 세계 각국의 각종 기관을 해킹하고, 국내에서도 해킹을 시도하고 있다. 정말 ‘국가’라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탈당, 바른정당 창당에 참여했다가 대선 전 첫 번째로 한국당에 돌아온 ‘복당파 1호’다. 최근 당내 일부 의원들은 “복당파는 탄핵 찬성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당시엔 어쩔 수 없는 가슴아픈 선택이었다”며 “한국당에 빨리 돌아온 건 굉장히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1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바른정당을 탈당한 뒤 복당한 이은재 의원(가운데)이 복당 후 처음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비대위 사무총장이자 복당파인 김용태 의원이 직접 당협위원장직을 내려놨다
본인이 그런 마음의 결정을 할 순 있지만, 원칙과 기본 없이 사람을 정해놓고 잘라내는 인상을 받았다. 시기적으로 공천 때도 아니다.
 
‘김병준 비대위호’는 순항하고 있나
지금 비대위는 조강특위 산하기관 같다. 비대위가 조강특위 결정에 대해서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비대위는 너무 무력하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다음 번에 당연히 총선에 출마할 거다. 이번에 당협위원장에서 배제된 만큼 두배, 세배 더 지역도 자주 찾고 열심히 뛸 거다”라며 집념을 드러냈다. ‘사퇴요정’이 순순히 자신의 사퇴를 받아들일 것 같진 않았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