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리병원 하나가 한국의 건강보험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많은 국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의료의 공공성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약 90%는 민간병원이고, 이들은 대부분 동네 의원으로 시작해 번 돈으로 큰 병원으로 성장했다. 의료가 공공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을 벌어 몸집을 불려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의식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다. 얼마 안 되는 공공병원도 중앙정부의 경영평가와 지방정부의 예산 압박 때문에 적자를 안 내는 게 중요한 일이 돼 버렸다.
제주 녹지병원 허가 놓고 논란
국내 공공의료 체계 매우 취약
10% 부자에 의료선택권 준다면
90%에겐 강화된 공공의료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한국사회가 영리병원을 둘러싼 극단적인 대립에서 벗어나려면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영리병원이 전체 병원의 약 10%를 차지하는 선진국 의료체계가 한국보다 훨씬 공공적인 이유는 나머지 90% 병원이 매우 공공적이기 때문이다. 돈 걱정하지 않고 환자를 진료해도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해주는 공공적인 병원이 대부분이라면 영리병원 몇 개가 생긴다고 국민이 불안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첫째, 의료취약지에 공공병원을 세우자. 전국 56개 진료권 4곳 중 1곳꼴로 큰 종합병원이 없어 입원환자 사망률이 높은 지역이다. 전국 진료권 중 경기도 이천·시흥, 강원도 영월·속초·동해, 충북 진천, 충남 서산·당진·홍성, 경북 문경·김천, 경남 거제·사천, 전남 여수 진료권이 모두 입원환자 사망률이 높은 의료취약지다.
둘째, 응급의료와 어린이 병원같이 공공성이 높지만 수익성이 낮은 의료를 담당하는 민간병원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하자. 중증외상센터처럼 정부가 의사와 간호사 인건비를 지원해서 수입에 연연해 하지 않고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 응급의료를 시장에 맡긴 결과 대도시가 신종 의료취약지로 전락해가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수익을 좇아 심장병원, 뇌졸중 병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대도시에는 밤에 문만 열어놓고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지 않는 병원이 수두룩하다. 병원은 많은데 정작 중증 응급환자는 갈 곳이 없어 안타깝게 사망하는 일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셋째, 민간병원이 공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의료체계도 바꿔나가자.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는 민간병원이 지나치게 이윤을 추구하게 하는 주범이다. 대학병원과 동네병원이 고혈압·당뇨병 환자를 놓고 경쟁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집을 불리고, 불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를 늘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병원은 중증환자를, 동네병원은 경증환자를 진료하도록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애초에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법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제정됐다. 노무현 정부를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서 영리병원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 영리병원 몇 개 생긴다고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는 튼튼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현 정부의 역사적인 책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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