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성장·고용·인구절벽은 더 가팔라졌다. 성장률은 2%대 중반으로 주저앉았고 최저임금 급등으로 제조업과 숙박·음식점·도소매 업종에서 30여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청년들의 결혼과 출산 포기가 더 심해져 3분기 출산율은 0.95명으로 떨어졌다. 상·하위 20%의 소득 격차는 5.52배로 벌어져 11년 만의 최고치다. 소득주도 성장의 참사다.
지지율 급락에 정책 변화 조짐
위기 때는 불필요한 것 버려야
소득주도 성장도 접는 게 당연
이제 묘수보다 정석대로 풀고
웬만하면 시장에 믿고 맡겨야
그제 문 대통령은 집권 이후 처음으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최저임금·탄력근로제를 국민 공감 속에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최저임금을 동결(20.5%)하거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50.8%)는 응답이 압도적이었다. 주 52시간 근무제도 ‘업종별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45.8%로 가장 높았다. 한마디로 소득주도 성장을 접으라는 게 민심이다.
하지만 앞날은 온통 지뢰밭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두 달 만에 뚝딱 최저임금을 16.4%나 올렸다. 이에 비해 최저임금 개선 작업은 소걸음이다. 태스크포스(TF)안과 기존계류법안 검토-전문가 의견 수렴-청년·고령자 등 대상별 간담회-지역별 토론회를 거치겠다는 입장이다. 경제가 망가진 뒤 2020년쯤에야 손질될 것으로 보인다. 경기 흐름도 좋지 않다. 정부는 “현재 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부정하기 쉽지 않다”는 3중 부정이 공식 입장이지만 한마디로 경기가 침체 중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다 내년 경제는 올해보다 더 나쁘리란 전망이 대세다. 언제 금리가 올라 가계부채와 부동산 침체가 뇌관이 될지 모르고 중국 경제의 경착륙도 우려된다. 새 위기가 닥칠 경우 대응할 재정·금융 수단이 거의 고갈된 것도 문제다.
이제 불필요한 소득주도 성장은 과감하게 버려야 할 때다. 부작용만 커질 뿐이다. 더 이상 최저임금 인상이나 노동시간 단축 같은 얼치기 묘수로 경제를 망가뜨리면 안 된다. 경제에도 정석이 있다. 그 첫 포석은 공정·민주화 같은 정치적 용어 대신 경쟁력·효율성·구조조정 같은 경제용어부터 복권시키는 일이다. 그리고 셰일가스 혁명과 디지털 혁명으로 잠재성장률을 확 끌어올린 미국을 눈여겨보라. 경제 성장에는 규제 완화와 신성장산업 발굴, 노동 유연화 등으로 생산성을 제고하는 방법 외에 다른 묘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비서실에 보고서의 글자 크기를 키워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답게 ‘문자 중독’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열심히 책과 보고서를 읽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혹 시간이 날 때 읽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몇 년 전에 나온 『경제는 정치인이 잠 자는 밤에 성장한다』는 책이다. 책의 제목대로 이제 웬만하면 시장에 맡기고 정부가 나서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가계와 기업 같은 경제 주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신뢰다. 시장에 맡겨둬야 미래가 예측 가능하고, 믿음이 생겨야 투자도 하고 소비도 하는 법이다. 그래야 차기 대선 공약집에선 ‘불통·정책 무능’ 같은 단어가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