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분수대] 미꾸라지의 역습

중앙일보

입력 2018.12.1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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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현 정치팀 차장

미꾸라지는 날이 추워지면 진흙으로 들어간다. 봄여름에 살이 올라 무더위에 지친 가을철 보양식으로 인기지만, 그 영양분으로 겨울잠을 자는 게 원래의 습성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한국의 겨울을 강타하고 있다. 맹추위인데도 진흙에서 스스로 기어 나왔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일하다 폭로자로 변신한 김태우 검찰 수사관 얘기다. 지난 15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궁지에 몰린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개울물을 온통 흐리고 있다. 곧 불순물은 가라앉을 것이고 진실은 명료해질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과연 미꾸라지일까. 이 어류를 들여다볼수록 그 비유가 절묘하다.
 
①물을 흐리다=미꾸라지는 먹이인 모기 유충(장구벌레)을 잡느라 바닥을 파헤친다. 주변은 늘 흙탕물이 된다. 이 포식 활동이 모기를 줄이고 물을 맑게 한다. 김태우 미꾸라지가 ‘물을 흐렸다’면 이는 이로운 일인가, 해로운 일인가. 물론 암행하며 공무원의 비위 첩보를 생산하는 일은 폭로와는 상극이다. 아직 사실로 단정할 수 없는 첩보이기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청와대 출신의 여권 관계자는 “개인의 일탈이다. 비리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 그 내용을 폭로하고 동료들까지 물고 들어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를 향한 의심 역시 함부로 떨쳐내기는 어렵다. 혹시 윗선의 심산은 ‘모기는 됐고 파리만 잡겠다’는 게 아니었는지….
 
②‘법꾸라지’ 트라우마=유독 정치권에서 이 물고기가 자주 등장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김기춘 비서실장 별명이 ‘법꾸라지’였다. 블랙리스트 등 국정 농단 의혹에 연루되고도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때 붙여진 것이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별명을 이어받았다. 그런 점에서 적폐의 마스코트쯤 된다. 6급 공무원인 김 수사관에겐 그다지 체형에 어울리지 않는 옷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법조인 출신 민주당 중진 의원도 “청와대가 감정적으로 미꾸라지 운운해서 김태우의 급을 키워줬다. 일개 수사관과 청와대가 진실 공방을 해서야 되겠나”라고 지적했다.
 
③weatherfish=동유럽에 사는 미꾸라지의 한 종은 ‘웨더피시’로 불린다. 말 그대로 날씨를 예보하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압축된 부레를 가져서 빈번하게 공기를 마시고 뱉는데, 날이 흐려져 기압이 변하면 그 활동이 더 빨라진다. 농부들은 이 본능을 습도계로 활용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직전 정부처럼 ‘정권 레임덕’의 신호탄일 수 있다는 예보는 맞을까, 틀릴까. 


김승현 정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