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뷰의 남자 이채훈 “살짝 비틀면 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8.12.1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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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훈

유튜브는 최근 가장 뜨거운 미디어다. 전 세계에서 수 없는 동영상 콘텐트가 올라온다. 문화나 언어가 달라도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영상의 마력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은 물론 기업, 정치인들까지 유튜브로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콘텐트중 주목받는 동영상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유튜버들에게 1000만뷰는 꿈의 숫자로 불린다. 그 1000만뷰를 넘는 콘텐트를 소리소문없이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광고 제작자 이채훈(42)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가 그 주인공이다.

광고인이 말하는 유튜브 제작 꿀팁
춤신 워너원을 그냥 서있게 하고
차도남 이정재 허당 매력 드러내

고달픈 택배기사 영상엔 공감코드
새우버거 광고는 비틀스 패러디

신문기사·책제목 보며 영감 얻어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감성 중요

이 CD는 워너원이나 이정재를 내세운 광고로, 또 택배기사를 앞세운 영상 등으로 유튜브에서 각각 1000만뷰 이상을 기록했다. 이CD를 만나 유튜브 1000만뷰 콘텐트 제작 노하우를 들었다.  


워너원이 가만히 서 있는 G마켓 광고. 멤버 강다니엘의 별명이 ‘사모예드’(개 품종)라는 점에 착안해 강아지를 출연시켰다. [사진 제일기획]

먼저, 이 CD가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반전’ 또는 ‘반대’였다. ‘춤신’이라 불리는 인기 아이돌 워너원은 이 CD가 만든 G마켓 광고에 등장해 판소리가 흐르는 산수화를 배경으로 가만히 서있을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4편이 제작됐는데 유튜브에서 총 1200만 뷰를 넘어섰다. 이 CD는 “워너원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면 차별화가 안 되기 때문에 아이돌 이미지와 반대편에 있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배우 이정재가 햄버거 광고에서 허당 매력을 펼치고, 엄격해 보이는 회사 부장이 바나나맛 우유를 마시는 장면 등도 바로 이런 반전 매력을 노린 장면이란 것이다.
 
이 CD가 두번째로 꼽은 것은 ‘공감’. 이 CD는 ‘시간을 달리는 남자’라는 영상에서 300개의 택배를 전달하기 위해 하루 200통의 전화를 받고, 98㎞를 이동하는 한 택배기사의 하루를 담았다. 식사를 거르는 택배기사들을 위해 고객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면, G마켓이 도시락을 선물하는 캠페인 영상이다.  
 
이 CD는 “택배 기사의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등 갑질 논란을 중간에 넣어 공감 포인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광고는 유튜브에서 1100만뷰를 기록했고, 이CD는 서울AP클럽이 수여하는 올해의 광고인상을 받았다.
 

비틀스 앨범을 패러디해 새우 4마리가 걸어가는 버거킹 광고. [사진 제일기획]

그 다음은 ‘깨알 재미’. 버거킹의 ‘통새우와퍼’ 광고를 보면 새우 4마리가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장면이 나온다. 이 CD는 “새우 4마리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은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이에요. 바로 비틀스의 앨범 커버죠. 비틀스가 애비 로드를 건넜잖아요. 그런데 재밌는 게 새우가 일본어로 ‘에비’ 더라구요”라며 웃었다.  
 
그는 또 “광고 촬영 당시 이정재 씨가 공교롭게도 손가락을 다쳐 손가락을 굽히고 있었는데 새우 모양 같아서 그대로 내보냈다”고 덧붙였다. 이 CD는 또 이런 깨알 재미를 주기 위해 G마켓 광고 중에 슈퍼주니어 김희철이 등장한 영상에선 복제된 수십명의 김희철이 모두 똑같은 표정 같지만, 자세히 보면 유난히 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김희철을 숨겨뒀다고 한다.
 

언어유희를 살린 바나나맛 우유 광고. [사진 제일기획]

이 CD는 ‘반보’와 ‘언어유희’도 강조했다. 그는 “반보만 앞서 나간다는 뜻의 영선반보(領先半步)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한다”며 “너무 앞서서 나가지 않고 살짝 하나만 비틀어주면 대박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CD가 사용하는 언어유희는 ‘반하나 안 반하나 바나나맛 우유’ ‘거기 세우(새우)라고!’라는 식의 카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CD는 “지난해 언어유희를 활용한 광고의 효과에 대해 논문을 썼을 정도”라며 “언어유희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수 없는 광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로서 그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올까 궁금했다. 이 CD는 “아침에 신문을 펼쳐놓고 기사를 읽는 걸 좋아한다”며 “태블릿이나 휴대전화로도 기사를 읽지만 화면 크기가 좁아 전체 그림을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방에는 종이 신문이 벽면을 꽉 채우고 있다. 누렇게 변한 2~3년 전 신문도 찾아볼 수 있다.  
 
이 CD는 또 대형 서점 근처로 이사할 정도로 서점 산책도 좋아한다. 책 제목들을 둘러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한다. 이 CD는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고 해도 사람들은 아날로그 감성을 절대로 버릴 수 없다”며 “신문 기사와 책 제목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성화선 기자 ss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