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평양 공동선언은 항마다 많게는 5개(2조), 적게는 1개(6조) 등 모두 18개의 세부 내용을 담고 있다. 본지 확인 결과 9월 정상회담 이후 85일 동안 양측이 이행한 사안은 모두 5개로 집계됐다. 군사적 긴장 완화 등 군사 분야 합의서 이행(1조 1항), 환경(산림 분야) 협력(2조 3항), 보건ㆍ의료 협력(2조4항) 등이다. 2020년 하계 올림픽 등 국제대회 공동 출전 및 2032년 올림픽 공동개최 협의(4조 1항), 10ㆍ4선언 11주년 기념행사(4조 3항)도 각각 체육 회담을 열어 협의했고, 남측 대표단이 지난 10월 4일부터 2박 3일간 평양을 찾아 공동으로 행사를 했다.
18개 세부 사항중 5개, 이행률 27.8% 불과
군사합의 진도 내는데 비핵화는 한 발도 못 떼
반면, 비핵화 등 나머지 13개 사안은 미뤄지고 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지난 10월 15일 고위급 회담을 열어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짰다. 그런데도 10월 중 북측 예술단의 서울 공연이나 11월 중 이산가족 면회소 시설 복구와 화상 상봉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적십자 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북측 지역의 경의선ㆍ동해선 철도와 도로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도 확정되지 않았다. 남북은 당초 11월 말~12월 초 착공식을 할 예정(고위급 회담)이었지만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8일까지 현지조사를 하는 실정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북측과 (착공식) 일정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도로의 경우 조사의 범위 등을 두고 이견을 보이면서 현지조사조차 일정이 미뤄지는 등 상황이 여의치 않자 정부는 ‘착수식’으로 성격을 바꾸려는 분위기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이날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이 어려울 것으로 내부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 합의 역시 늦춰질 전망이다.
특히 북미 관계와 연동된 북한의 비핵화는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유관 국가들 전문가들의 참관 속에 동창리의 미사일 실험장이나 발사대를 영구폐기하기로 했던 약속 역시 아직이다.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은 “9월 평양 공동선언에 비핵화 문제는 ‘미국이 상응 조치를 하면~’이라는 식으로 조건부로 돼 있다”며 “북한이 그동안 남측을 배제해 왔던 핵 문제를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담은 건 의미가 있지만, 북미 대화가 정체되면서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남북 관계가 북ㆍ미 관계와 연계돼 있다 보니 남북의 의지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올해 세 차례의 정상회담 등 남북 관계에 속도가 났고, 북측의 경우 남북관계를 전담하는 통일전선부가 미국과의 협상도 챙기다 보니 북측 내부적으로 벅찬 경향이 있다”(정창현 현대사연구소장)는 분석도 있다.
조 장관은 11일 한 강연에서 이산가족화상상봉, 영상편지 교환을 언급하며 “북측과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문서교환 방식으로 협의해 나가고 있고, 내년 초부터는 아마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만간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협의가 이어질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부 당국자는 “남북 간 9월 평양 공동선언 이행 위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양측 모두 합의를 이행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해가 바뀌더라도 변함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