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테러지원국 ‘멍에’부터 벗어야 IMF 가입
미국의 인권 카드는 표면적으론 ‘김정은 체제’에 대한 압박이지만 그 이면엔 ‘돈’ 문제가 숨어 있다. 북한이 절실히 원하는 ‘경제강국’ 달성을 막는 게 인권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보상으로 바라는 경제 발전에는 세계은행(WB),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저개발 국가를 위해 차관을 제공하거나 기술 및 능력 배양을 지원하는 국제금융기구의 원조가 필수다.
최용해 제재 이어 종교우려국 지정
트럼프 “비인권국가 지원 말라”
세계은행·IMF 등에 차관 금지령
경제개발 원하는 김정은 압박
미국이 10일 웜비어를 공개 거론하면서 북한 2인자최용해 제재를 발표한 건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보상을 쉽게 줄 수 없다는 메시지도 깔렸다는 게 외교가의 해석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테러지원국 문제에 예민하다. 2007년 2ㆍ13 합의 때도 북한은 IAEA 사찰단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테러지원국 해제를 명시적으로 요구했다”고 전했다.
美, 인권 명분으로 언제든 대북 원조 차단 가능
또 미 국무부는 매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내고 세 개 등급으로 국가들을 분류한다. 북한은 올해도 최하 등급인 T3을 받았다. 16년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통령 결정문’을 발표해 북한을 비롯한 T3 국가들에 대해 ‘비인도적 지원이나 비무역 관련 지원’을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 개발은행이나 IMF에 나가 있는 미국 인사들은 해당 기관이 T3 국가들의 기금 이용과 대출 요청을 거부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고 반대투표를 할 것을 지시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국제 금융기구를 상대로 북한 같은 3등급 인권 국가들을 돕지 말라는 ‘차관 금지령’이다. 일부 T3 국가들은 이미 세계은행의 지원이 끊긴다는 통첩을 받고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폼페이오 장관이 11일 발표한 종교 자유 특별우려국을 통해서도 미국이 경제 제재를 할 수 있다. 미국의 ‘국제적 종교 자유법’은 특별우려국들과 무역 관계를 수립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생각 여하에 따라 앞으로 대북 후속 조치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지금은 북한이 미국 등과 교역을 하지 않으니 실효성이 없는 조치로 보이지만,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하면 문제가 달라진다”며 “전적으로 미국의 자의적 판단에 달린 문제로, 협상에서 미국이 진짜 히든카드로 쓸 수 있는 게 인권”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붙잡고 있는 장녀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이 인권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T3 국가에 대한 결정문을 발표한 지난달 29일 이방카는 워싱턴포스트(WP)에 기명 기고를 내고 “미국은 엄청나게 관대한 나라이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 국민의 혈세를 이처럼 지속적으로 인신매매 문제 대처에 실패한 국가 정부들을 지원하는 데 쓰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북한 인권과 제재 문제를 다뤄온 국제법 전문가 신창훈 박사는 “최근의 국제사회 추세를 보면 차관이든, 대북 민간 직접 투자든 결국 북한의 사회ㆍ경제적 체질이 개선돼야 가능하다. 정말 북한이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에 편입되게 하려면 정부도 북한이 국제사회와 인권 개선을 위해 대화하도록 정책적 우선순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