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플랫폼 폴인(fol:in) 에서 이들을 ‘지금, 여기’로 소환해 재조명한 < 여자, 최초가 되다: 근대 1세대 일하는 여성을 만나다 > 디지털 콘텐츠를 발행합니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 걸출한 문인이면서 승려였던 김일엽, 사회주의 혁명가 허정숙, 최초의 여자 변호사 이태영, 그리고 코스모폴리탄 천재 화가 천경자까지.
나혜석,김일엽,허정숙,이태영,천경자
'최초'라는 수식어 달고 유리천창 부순 여자들
이들의 생애, 성취, 사회적 의미까지
지식 플랫폼 폴인 사이트에서 7일 발행
장영은 연구자는 “시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답게 사는 것, 나답게 일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여성들을 통해 용기와 힘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20세기 초 여성들의 이야기가 21세기 현대의 젊은이들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까요. 장영은 연구자와 나눈 이야기를 전합니다.
(※본 기사는 지난 10월 '여자, 최초가 되다' 강연 당시 진행했던 인터뷰를 재발행한 것입니다.)
- 한국에서 처음 여자 학교가 설립된 게 1886년 이화학당이었습니다. 여성이 학교에 다닌 역사가 이제 갓 130년 된 셈이죠. 근대 여성 지식인 연구를 시작하면서 처음 이 시기를 주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남성은 근대 이전에도 태학, 국학, 주자감, 국자감, 성균관 등 교육기관이 많았어요. 서원, 서당도 있었고요. 반면 여성은 근대에 들어서 처음 학교에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바로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진 '최초의 일하는 여성'이 등장하게 된 시대죠. 당시 이들은 계층, 계급, 정치적 이념 등에 상관없이 돈독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어요. 또 상당수가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남겼는데, 자기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무척 다양해 흥미를 갖고 연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 이들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에서 어떤 특징을 발견하셨나요.
"다들 굉장히 주체적이고 용기 있었어요. 또 세상을 향한 욕망이 컸던 사람들이죠. 독립을 추구한 사람,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를 추구한 사람, 권력이나 돈을 추구한 사람까지 다양했는데, 그러면서도 언제나 시대의 한계에 부딪히며 스스로 여성임을 확인하며 살았죠. 대학 총장이 되고, 장관이 되어 성취를 거둔 사람도 현장에서 여성이라 받는 차별과 한계를 경험했으니까요. 그만큼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살아남는 게 어렵다는 뜻이겠죠. 살아남은 한 두 명이 여성 전체로 평가받기도 하고요. 지금 한국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역사적 인물들에게 현재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분들의 성취와 좌절을 통해 결국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일해야 할까 우회적으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연구자님이 엮고 해설한 『나혜석, 글쓰는 여자의 탄생』을 읽어보면, 나혜석은 자기 자신을 바닥까지 솔직하게 내보이는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실제로 여성 지식인의 회고록이 남성 지식인의 회고록보다 다양한 편이에요. 공식화된 것은 아니지만, 남성 지식인의 회고록은 ‘영웅 서사’가 많죠.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 성취를 이뤘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았다’라는. 그에 비해 여성은 여러 난관이나 갈등 속에서 살길을 찾아 나가는 서사가 많은데, 그러면서도 자기 한계나 모순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복합적인 텍스트라 매력이 있어요. 이름을 덮고 읽어도 누구의 자서전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다 자기만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솔직하게 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어요.”
- 다섯 분을 주목했어요. 첫번째 순서는 1896년생 동갑내기 친구였던 나혜석과 김일엽입니다.
- ‘혁명이 직업이었던 승부사’ 허정숙은 어떤가요?
"허정숙은 진정한 실천주의자였어요. 동아일보 최초의 여자 기자였는데, 취재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과 네트워크를 다지며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낸 지식의 매개자이자 생산자였죠. 사회주의자였지만 독립운동, 여성운동, 해외 여러 지식을 소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문화 운동까지 열심히 했어요. 여성이 단발해도 되는가, ‘단발 논쟁’에도 참여했고요. 여성운동단체 근우회를 이끌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했습니다. 어떤 장애물이 와도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주체적으로 살아온 그는, 피가 뜨거운 타고난 혁명가였어요."
-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도 다루셨는데요.
- 마지막으로 주목한 여성은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천경자입니다.
"천경자는 예술을 직업으로 한평생 자기 자신을 증명한 여성이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림 공부를 하려고 해외 유학을 다녀왔어요. 당시엔 전업 화가가 드물었는데, 천경자는 그림으로 승부를 본 예술가였죠. 그림에 전념하려고 교수직도 그만둡니다. 그는 인간의 원시적 고독이나 고통, 잔혹한 운명을 피하지 않고, 용기 있게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이른바 한국적이란 것에도 얽매이지 않았고, 국경을 넘어 전 세계를 자기 방식대로 그려냈어요. 후에 자신의 그림을 대부분 기증해 대중에게 돌려줬습니다."
- 이 다섯 분은 ‘일하는 여성’이란 강력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일과 여성의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죠. 20세기 초에 ‘일’은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고, 여성의 일은 가정 내로 고착해서 생각했잖아요. 이분들은 여성의 일이 사회에도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무엇보다 자기 일을 사랑했고 소중하게 여겼어요. 결국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일을 사랑해야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 1960년대 NASA(미국항공우주국)에 흑인 여성 수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굴, 조명한 영화 ‘히든 피겨스’(2016)가 개봉해 화제를 모았는데요. 온몸으로 유리천장을 부순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 조명하고 공부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역사를 공부하면 지혜와 용기, 그리고 든든함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 나의 좌절과 실패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니까요. 저는 여성이 사회의 중요한 자리에 많이 진출할수록 더 좋은 사회가 된다고 믿어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에게 어떤 기자가 ‘혹시 대법관 자리를 여성이 다 차지하기 바라나요?’라고 물었는데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네, 그런데 그게 왜 문제죠? 남자들이 다 대법관을 할 때는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잖아요.’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얼마만큼 변했는지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고, 나혜석, 김일엽, 허정숙, 이태영, 천경자를 통해 그 출발 선상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관련 주제로 대중 강연을 많이 하시잖아요. 특히 2030 젊은 세대의 호응이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20~30대는 집이나 학교에서 여성으로 차별받거나 한계를 크게 경험하지 못하다가, 사회에 나가 그 벽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폭력에 노출되고, 결혼·출산·육아 등의 문제를 겪으면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는 걸 많이 확인했어요. 다들 정말 똑똑하고, 사회에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데 막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리천장을 크게 느끼고 있었어요. 어떤 분야든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왜 여성이 극소수인가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고요. 그런 점에서 근대의 1세대 일하는 여성들에게 공감하는 것 같아요. 최고의 스펙을 갖췄는데도, 왜 어떤 지점에서 주저앉게 됐을까 감정 이입이 가능한 것이죠. 그 때보다 지금이 전체적인 교육 수준이나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 여성 인권은 분명 향상됐지만, 일하는 여성으로서 갖는 한계는 어떤 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절실히 느끼는 것 같아요.”
- 이 콘텐츠를 통해 독자분들이 어떤 것을 얻어 가면 좋을까요.
“저는 용기를 얻어가셨으면 해요. 1900년대 초반에 이미 유학도 가고 세계를 다니면서 앞선 문명을 보고 온 여성들이 있었어요. 막상 조선에 돌아왔을 때 기다리는 건 차별과 좌절뿐이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답게 살려고 노력했어요. 타협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것, 끝까지 살아남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용기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불안하죠.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열심히 하다 보면 내가 꿈꾸는 자리에서 뜻을 펼칠 수 있을지, 그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해보는 것, 그 안에서 어떤 가능성이 움튼다고 봐요.”
장영은 문학연구자의 <여자, 최초가 되다: 근대 1세대 일하는 여성을 만나다> 콘텐츠는 폴인 사이트(folin.co)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효은 기자 hyoe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