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다 진보적 법학자가 수장으로 있는 청와대 민정실과 정부부처 감사관실까지 공직자들의 스마트폰을 우격다짐으로 들여다보는 역설적 광경은 현 정부가 강조하는 인권과 어떻게 연결지어야 하나. 영화 ‘완벽한 타인’에 나오는 표현처럼 공적·사적인 기능에 더해 비밀의 공간이 혼재된 스마트폰을 아무렇게나 까발려 보겠다는 것은 폭력적이고 반(反)민주적 발상이 아닐까. 초대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음(Nothing to hide)’을 강요하는 위험한 저녁자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무차별적 압수는 사생활 보호라는 헌법적 가치 침해
개개인의 존엄성 지키기 위한 입법 장치 서둘러야
이제 검찰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수사와 실적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스마트폰은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블랙박스다.” 무슨 말일까. 스마트폰 압수와 내용물 분석은 아직까진 법률적 무풍지대다. 디지털 포렌식 분석을 통해 내용물 전체를 파악하고 수사자료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컴퓨터 압수는 영장에 기재된 범죄혐의와 관련된 검색어(key words)를 통해 해당 서류들만 발췌해야 한다. 과거 컴퓨터를 통째로 복사하거나 압수해왔던 것이 법률적으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검색어를 통해 압수한 서류들도 관련자들과 함께 열람하고 동의를 해야 증거로 채택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은 아직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런 부조리는 별건 수사로 이어지거나 사생활과 관련된 약점을 잡고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한 전직 대기업 임원이 검찰 수사 도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경에도 스마트폰에서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진 별건 수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만약 압수수색 과정에서 스마트폰을 버려버리거나 폐기하면 어떨까. 다른 공범과의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있다면 증거인멸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어 쉽지도 않다. 법치의 무서움보다는 가벼움, 또는 허탈함이 느껴지지 않나. 간첩을 잡기 위한 감청영장에는 ‘통신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내세워 그토록 까다롭게 하면서 국민들의 휴대전화는 너무나 쉽게 압수할 수 있는 건 법치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적폐 청산을 명분으로 이뤄지는 수사상 편의가 헌법적 가치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입법작용이 뒤따라야 한다. 개인이 작성한 일기장이나 비망록을 형사사건의 유죄증거 자료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최근 비리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전직 청와대 민정실 특별감찰반 직원들이 스마트폰 제출을 거부했다. 다른 부처 직원들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던 걸까. 일단 스마트폰은 갖고 튀는 게 상책인가.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