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위야 어떻든 62세 ‘젊은’ 회장의 결정은 한국 재계의 세대교체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시불가실(時不可失)이라 했건만 오너가 끝까지 자리를 놓지 않다 문제가 된 경우를 여러 차례 봐 왔다. 2000년 현대그룹 ‘왕자의 난’이 그랬고, 아직도 잔불이 꺼지지 않은 롯데그룹이 그랬다.
세대교체 앞둔 현대차
미래형 리더십 고민해야
일반인이 기억하는 정 회장의 마지막 모습은 2016년 12월 6일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 자리였다. 정 회장은 오후 청문회 도중 “어지럽다”며 국회 의무실을 거쳐 병원으로 갔다. 그 후 그룹 부회장들을 불러 중국 사업 관련 회의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알려졌다’로 시작된 기사였다. 팔순의 나이와 맞물려 건강 이상설이 도는 것도 당연하다. “경영자들은 자신의 건강에 대해 주주에게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전립선암 발병 경력이 있는 워런 버핏의 말이다. 그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업 의사 결정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주주들은 알 권리가 있다.
올해 만 48세의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은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고민이 많다고 한다. 그는 최근 “현대차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 바꿔 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차 같은 미래 차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면 부가가치 낮은 제조업체에 머무르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하지만 현대차의 현재는 실망스럽다.
추락한 실적 때문만은 아니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차·커넥티드차·자율주행차 기술 개발은 글로벌 경쟁업체와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넥쏘’로 대표되는 수소차에 공을 들이지만 충전소 같은 인프라가 부족해 정부 지원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12조원 넘는 돈을 들이고도 아직 착공도 못 한 삼성동 한전 부지는 현대차의 굴레가 돼 가고 있다. 시장은 “그 돈의 10분의 1이라도 수소차 인프라 구축에 써 보라”고 냉소하고 있다.
현대차 내부 관계자는 “회장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지만 아직도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부친의 권위를 존중하는 정의선 부회장의 태도도 여전하다”고 귀띔했다. 회장의 복심이라는 부회장들도 건재하다. 그룹 내부 의사 결정이 정 부회장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계열사를 분할·합병해 경영 승계 그림을 그리겠다는 구상은 주주들의 반대로 보류된 상태다.
현대차는 이달 중순 임원 인사를 한다. 대대적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과 시늉에 그칠 것이라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의사결정이 흔들리면 현대차의 미래도 흔들린다. 우리 자동차 산업을 위해서라도 신·구 리더십의 혼란을 지혜롭게 극복할 필요가 있다. “불현듯 내가 바로 걸림돌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이웅열 퇴임사의 한 구절이다.
이현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