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국회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 심사 법정시한은 12월2일이다. 정상적인 처리를 위해서는 국회에서 이달 30일까지 심의를 끝내야 한다. 그러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등 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 구성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과 야당의 국회 보이콧 등으로 예산소위의 출범(11월21일)이 예년보다 한참 늦어졌다. 내년도 슈퍼 예산안을 정밀 감정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부족하게 된 것이다.
소소위는 예결위원장과 예결위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책임자가 비공개로 진행하는 심사를 뜻한다. 논의 과정이 기자들에게 공개되고 속기록이 남는 소위와 달리, 소소위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 예산의 타당성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들만의 ‘깜깜이 심사’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특히 올해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쪽지예산(국회의원의 개인적인 민원 예산)’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사업에 예산을 늘려달라고 다른 의원에게 쪽지를 건넨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근에는 메시지 전송 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카톡예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국회와 기재부에 따르면 현재 각 상임위원회가 예비 심사를 마치고 예결위에 넘긴 예산안 증액 규모(정부 안 대비)는 10조원이 넘는다. 지역구 관심 사업이 많은 상임위를 중심으로 증액 규모가 컸다. 국토교통위가 2조5500억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가 2조300억원 등이다.
전남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 예산 20억원을 추가한 게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이 공항의 이용률은 당초 수요예측 대비 1.5%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기준 적자액은 139억900만원으로 전국 공항 중 가장 크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지만, 국회는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이를 추가한 것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문제는 사업이 정말 타당한지에 대한 정밀한 심사보다는 지역구 표를 의식해 이뤄진다는 점”이라며 “결과적으로 꼭 필요한 국가 예산은 소외되거나 축소되고 정치적 입김이 센 의원의 특정 지역에만 예산이 편중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결국 재정을 안정시켜야 하는 국회 본연의 기능은 약화하고, 혈세를 낭비하는 부작용만 키우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예산안 심사가 지연되면서 경제 정책 일정이 연쇄적으로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다음 달 중순쯤 발표할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데 혼선이 발생한다. 예산 집행을 위한 사전 준비 시간이 부족해 예산 집행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기재부 관계자는 “예산 심사 기간에 경제부총리의 교체를 발표하면서 정부가 예산안을 끌고 갈 동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고 전했다.
국회선진화법이 발효된 2014년부터 국회 예산 심사는 예산안 자동부의제도를 적용받는다. 예결위가 11월30일까지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다음 날(12월 1일) 정부 예산안이 원안 그대로 본회의에 부의된다. 다만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에 따라 본회의 상정을 연기할 수 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12월3일 새벽에 예산안이 통과됐고, 지난해에는 12월6일 새벽에 예산안이 처리된 바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늦어져 또 불명예 신기록을 세울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