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변인이 ‘이간질’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오보 논란은 지난 26일 오후 석간신문인 아시아경제 1면 기사에서 촉발됐다. ‘“한미동맹 균열 심각”…靑의 실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신문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보고서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 평가와 전망’을 인용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불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청와대가 인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보도 직후 브리핑에서 “청와대나 국가안보실에서 작성한 문건이 아니다”고 밝혔다. 청와대 문서에 찍히는 ‘The Republic of Korea’ 워터마크와 문서 마지막에 인쇄되는 출력자와 출력 시간 등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후 기사의 근거가 된 가짜 보고서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보고서를 최초로 접한 사람은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이었다. 김 소장은 지난 13일 권희석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 명의의 이메일을 받았다. 권 비서관은 22일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가 주최하는 제5회 한ㆍ중 정책학술회의에서 오찬 연설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이메일에는 9쪽짜리 ‘권희석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의 강연 원고’라는 제목의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그런데 문서에 ‘안보 사안이니 보안을 요한다’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공개 발표문이기 때문에 보안을 지킬 필요가 없는데도 그런 문장이 적혀 있는 것을 김 소장은 이상하게 여겼다. 김 소장이 권 비서관에게 연락해보니 그가 보낸 메일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김 소장은 행사 참석자들에게 권 비서관을 사칭한 이메일을 조심하라고 알렸다고 한다.
문제의 가짜 문서가 26일 ‘청와대 보고서’로 언론에 다시 등장했다는 게 김 소장과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김 소장은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나에게 확인 작업만 거쳤더라도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칭 이메일을 보낸 이의) 언어 구사나 접근 방법이 대단히 정교해서 이 업계의 내막을 아주 가까이서 잘 아는 집단의 소행으로 추정한다”고도 했다. 누가, 왜 가짜 청와대 보고서를 보냈는지는 경찰 수사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