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하지만 아직 닫을 기회는 있다.”
26일 오후 중국 생명과학자 122명이 연대 성명을 내고 ‘유전자 편집 태아’를 규탄했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의 ‘지식분자’ 계정에 올린 성명에서 이들은 “크리스퍼(CRISPR·유전자 편집) 기술은 과학계 내부의 커다란 논쟁”이라며 “과학적으로는 어떤 혁신이나 가치도 없는 기술”이라고 단정했다.
中 허젠쿠이 연구팀 “수정란 에이즈 유전자 편집”
생명윤리학자 “고사포로 모기 잡은격…윤리 어긋”
당국 “엄중 조사”…355억 유치 중국판 황우석 논란도
중국 당국은 즉각 진상 조사에 나섰다. 의료를 총괄하는 국가위생계획생육위원회(衛計委)는 심야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을 고도로 중시한다”며 “관계 기관에 조사를 지시했으며 국민 건강과 과학 원칙, 현행 법규에 따라 처리하고 결과는 즉시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실험의 윤리 심사를 맡은 것으로 알려진 선전의 허메이(和美)병원도 “해당 연구를 진행하지도, 태아가 본 병원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다”며 협력 관계를 부정했다.
이번 실험의 임상 실험자는 베이징의 에이즈 환자 공익기구인 ‘바이화린(白樺林)’이 제공했다고 신경보가 보도했다. 책임자인 바이화는 “2017년 3월 허젠쿠이에게 조건에 맞는 50여 쌍의 부부를 소개해줬다”며 “윤리 문제가 우려됐으나 심사 통과에 문제 없다는 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중국 SNS에서는 허젠쿠이의 지나친 기업 활동이 도마에 올랐다. 중국판 황우석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는 7개 기업의 대주주로 6개 회사의 법정 대표다. 선전시 한하이지인(瀚海基因·영문명 Direct Genomics)의 지분 27.42%를 보유한 창업자 겸 대표이사다. 2012년 창업한 한하이지인은 지난 4월 2억1800만 위안(355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홈페이지에는 낮은 가격으로 DNA와 RNA 등 유전자 검사를 제공한다며 70여개 핵심 특허와 40여개 발명 특허를 보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2006년 중국 과기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남부의 하버드로 불리는 라이스 대학에서 유학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2010년 ‘국가우수자비유학생’ 상과 미국 과학촉진협회가 수여한 제85차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2012년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과정을 마친 뒤 그해 선전시의 해외 우수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공작계획’에 선정돼 남방과기대에 개인 실험실을 제공받고 귀국했다.
허젠쿠이는 27일 홍콩에서 개막한 제2회 국제 인류유전자편집 포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중국의 생명 윤리학자인 추런쭝(邱仁宗) 사회과학원 교수는 “유전자 편집으로 에이즈 감염을 막은 것은 고사포로 모기를 잡은 격”이라며 “인류의 유전자 창고를 바꿨다”며 질타했다. 1975년 노벨생리학상 수상자인 데이빗 볼티모어 교수도 “윤리에 어긋나는 불행한 사건”이라고 우려했다고 중국신문망이 보도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