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검은 예수’ 드록바

중앙일보

입력 2018.11.23 00:02

수정 2018.11.2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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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사인 유니폼을 선물하는 드록바(왼쪽). [드록바 인스타그램]

축구의 힘으로 전쟁을 멈췄다고 해서 ‘검은 예수’로 불렸던 디디에 드록바(40·코트디부아르)가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드록바는 22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0년은 내게 엄청난 시간이었다. 이제 은퇴해야 할 시기”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는 자서전 제목 『헌신』처럼 그라운드 안팎에서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했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에서 태어난 드록바는 6세 때 축구선수 삼촌을 따라 프랑스로 건너갔다. 피부색이 다른 그는 유년 시절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 한 백인 소년은 드록바의 피부가 검은색인지 확인하겠다며 살을 문질러보기도 했다.
 
1998년 프랑스 르망에서 프로에 데뷔한 뒤 갱강에서 뛸 때도 인종차별은 계속됐다. 갱강팬으로부터 ‘바나나 먹는 놈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적힌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그래도 드록바는 이를 악물고 그라운드를 누빈 끝에 2003~04시즌 프랑스 올랭피크 마르세유에서 32골을 기록했다. 조제 모리뉴 감독은 2004년 잉글랜드 첼시 지휘봉을 잡은 뒤 드록바를 영입했다. 드록바는 모리뉴 감독의 부응해 프리미어리그 4회, FA컵 4회 우승을 이끌었다. 폭발적인 슛과 타점 높은 헤딩으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두 차례 올랐다.

첼시 시절 엄청난 득점력을 뽐낸 드록바. [드록바 인스타그램]

 
드록바는 2012년 바이에른 뮌헨(독일)과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동점 골을 넣으면서 첼시의 우승을 이끌었다. 모리뉴 감독은 “드록바와 함께라면 어떤 전쟁에도 나갈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박지성(37)은 “드록바의 몸은 그냥 바위다. 살짝 부딪혀도 나가떨어질 정도”라고 회상했다.

프리미어리그 첼시 4회 우승 이끌어
“무기 내려놓자” 호소, 내전 종지부

드록바는 2012년 이후 상하이(중국), 갈라타사라이(터키), 몬트리올(캐나다) 등을 거쳐 2017년 미국 피닉스 라이징 공동구단주 겸 선수로 뛰었다. 지난 9일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뛰었다.
 
드록바는 코트디부아르 대표로는 104경기에 출전해 65골을 터트렸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일본전에서 0-1로 뒤진 후반 17분 교체 출전해 2-1 역전승을 이끌어냈다.
 
드록바가 2005년 수단을 꺾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출전권을 따낸 뒤 국민들에게 무릎 꿇고 호소한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당시 드록바는 “북부·남부·동부·서부에 사는 코트디부아르 국민 여러분, 우리는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뛴다면 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용서하자. 일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이 모습은 아프리카 전역에 TV로 생중계됐다. 드록바의 호소에 감명을 받은 정부군과 반군은 수년간 이어지던 내전을 중단하고 총부리를 거뒀다. 이는 2007년 평화협정으로 이어졌다.
 
드록바는 이후에도 직접 자선재단을 설립한 뒤 국제 사회에 종전을 호소했다. 펩시콜라 광고료로 받은 55억원을 고향의 병원 건립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