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판사는 청주지법 판사로 근무하던 2013년 7~11월 사법연수원 동기의 소개로 만난 이모(40)씨로부터 9차례에 걸쳐 총 636여만원 상당의 술 접대를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당시 청주지법에서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고, 김 전 판사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김 전 판사가 판사 지위를 이용해 직무와 관련한 청탁을 받았다고 보고 알선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했다. 향응을 제공한 이씨에게는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했다. 이들이 문자메시지로 서로를 ‘형님’, ‘동생’이라 부르기도 하면서 이씨가 구속되기 직전까지 만남을 이어갔고, 김 전 판사가 이씨에게 사건을 담당하는 공판검사까지 소개해준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1심 재판을 맡은 대전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 박창제)는 지난 1월 김 전 판사가 받은 향응에 대가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재판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전화나 문자메시지 등으로도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며 “이는 재판 청탁을 한 사람의 행동으로는 이례적이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자신의 혐의만을 말했을 뿐 구체적 내용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전 판사와 이씨가 서로를 형님·동생이라 불렀다는 점은 오히려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법관으로서 심히 부적절한 행동이었던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김 전 판사 입장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씨가 친분관계에 의해 술과 음식 등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이들이 법원 근처에서 술자리를 가졌고, 김 전 판사가 이씨 사건을 맡은 공판검사를 소개해 준 것도 무죄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김 전 판사가 이씨에게 재판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면 공판검사에게 더욱 친분관계를 밝히지 않으려 했을 것”이라며 “관계를 숨기려고 하지 않은 채 청주지법 근처 식당과 술집으로 약속 장소를 정한 건 뇌물 수수 공무원의 행동으로서는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2심 재판부와 대법원이 1심의 무죄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김 전 판사는 수백만원의 향응을 접대받고도처벌을 면하게 됐다. 이미 법관을 사직한 터라 공무원 윤리강령 위반에 따른 징계를 면했고, 징계시효가 지나 변호사 윤리강령 위반에 따른 징계 역시 피하게 됐다.
김 전 판사의 무죄가 확정되자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에 대해 법원이 계속해서 제동을 걸면서 비판이 나오는 와중에 스스로 비판을 초래했다”며 “전형적인 재판 청탁에 대해 1·2·3심이 모두 무죄라고 판단한 건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