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보니 여자가 먼저 쳐”…1년 전 ‘이수역 폭행 닮은꼴’ 봤더니

중앙일보

입력 2018.11.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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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20대 남성 박민구(가명)씨는 “나오라”는 여성 지인의 연락을 받고 서울 강남의 한 술집에 갔다. 오후 8시쯤 도착한 술자리에는 처음 보는 여성인 김현경(가명)씨도 앉아 있었다. 박씨는 “잘 부탁드린다”며 합석했고, 기분좋게 술을 마셨다.
 
이들은 두 시간만에 소주를 10병이나 비웠다. 특히 박씨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상태가 됐다. 김씨는 그에게 “왜 이렇게 취했냐”며 면박을 줬다. 기분이 상한 박씨는 김씨와 말다툼을 벌였고, 싸움에는 처음에 박씨를 부른 여성 지인도 가세했다. 이 장면을 끝으로 박씨는 기억을 잃었다.

'남·녀 술집 시비'가 폭행…CCTV로 진위 파악

[사진 중앙포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현장에는 경찰이 충돌한 상태였다. 김씨가 얼굴을 감싸쥐고 있었고,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김씨는 “박씨가 주먹을 날려 이렇게 됐다”고 지목했고, 경찰은 박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박씨의 얼굴과 목덜미 곳곳에도 상처가 있었지만 김씨는 “박씨가 휘두르는 폭행을 막기 위해 반항한 것”이라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경찰서에서 박씨는 “김씨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합의를 원했다. 그런데 자신이 김씨를 왜 때리게 됐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돌려본 박씨 앞에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화면이 펼쳐졌다.

 
영상에 담긴 반전 비슷…배상은 누가 더 많이?
 당시 영상에는 여성들이 먼저 자신에게 달려들어 넘어뜨리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박씨가 넘어지자 김씨 등은 그의 머리를 발로 차고 짓밟기도 했다. 특히 김씨는 쓰러진 박씨 위로 올라타 양손으로 목을 조르고, 주먹으로 얼굴을 수차례 때렸다. 이후 박씨가 여성을 뒤에서 쫓아가 때리는 바람에 경찰이 출동하게 된 것이다.


 
박씨는 김씨를 폭행 혐의로 맞고소했고, 사건을 맡은 판사는 ‘쌍방 폭행’으로 결론지었다. 둘은 서로에 대해 각자 손해배상도 청구했는데, 민사소송 재판부는 박씨의 과실이 ”70%로 더 크다“고 봤다. 박씨는 타박상이 대부분이었지만, 김씨는 광대뼈가 함몰될 정도로 피해가 컸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박씨가 김씨에게 약 700만원을, 반대로 김씨는 약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이수역 폭행 사건' 논란[네이트판 캡처]

온라인 대결로 수사 혼탁해져…“차분히 지켜봐야”
 법조계에 따르면 ‘이수역 폭행’과 이 사건은 유사한 측면이 많다고 한다. 처음 보는 남녀가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폭행으로 번진 점, 처음에 여성 측에서 ‘일방 폭행’을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먼저 물리적 접촉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 등이다. 이수역 사건도 여성이 머리에 손상을 입어 피해가 큰 것으로 추정되지만, 여성이 계단에서 넘어져 다친 것인지 남성이 밀친 게 원인인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법무법인 이로 박병규 대표변호사는 “폭행 사건에서는 누가 먼저 때렸냐는 게 양형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면서도 “재판에서는 다친 정도와 경위 등을 따져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힘이 우세한 상대방이 방어를 넘어 적극적 공격을 했다면 더 무겁게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수역 사건의 경우 남녀 양 측에서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영상을 경쟁적으로 공개하면서 혼란스러워지는 모양새다. 박 변호사는 ”폭행 사건 당사자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주장만을 하는 건 흔한 일”이라면서 “차분하게 경찰 조사를 지켜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