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모든 게 착각이었다. 어느 날 사비로 산 미니 선풍기와 발광다이오드(LED) 라이트를 회사에 가져오자 A는 “왜 샀느냐”고 추궁했다. “업무 중 필요하다”는 답변에 A는 “변명하는 입이 문제”라며 김씨의 얼굴을 때렸다. A는 “피하면 회사 쫓겨난다”며 계속 때렸고, 김씨는 입술이 터져 피가 날 때까지 맞았다. 다른 직원은 A가 운영하는 카페에 지원 업무를 갔다가 골프채로 맞기도 했다. 잘못된 색상의 셔츠를 입고 왔다는 이유였다. 실수한 직원을 나이 어린 직원에게 주먹으로 때리게 시키기도 했다. A는 “일하는 방법을 모르는 녀석들을 가르친 것”이라고 폭행을 정당화했다. 지난해 퇴사한 김씨가 2년여 동안 일하며 받은 돈은 15만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 ‘IT 노동자 직장 갑질ㆍ폭행 피해 사례 보고’에는 ‘제2, 제3의 양진호’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이 주최한 이 날 세미나의 사례는 구속된 위디스크 양진호 대표의 행위와 유사했다. 첨단 산업이라는 화려한 외양과 달리 갑질ㆍ폭행ㆍ폭언으로 얼룩진 IT업계의 실상이 드러났다.
또 다른 IT기업 C사는 퇴사한 직원에게 일을 시키고 거절하자 고소를 했다. 피해자는 프로그래밍 업무의 특성상 퇴사 후에도 어느 정도 돕는 관행에 따라 일을 도왔지만, ‘강제 노역’이 한 달 넘게 이어지자 거절했다. 그러자 회사 측은 그가 퇴사 전 쓰던 컴퓨터를 복구해 ‘고의로 파일을 삭제했다’는 누명을 씌워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교육 콘텐츠 업체 D사는 업무가 끝난 뒤 ‘자아비판’이나 ‘반성문’ 형식의 업무보고를 강요했다. 채식주의자인 직원에게 육식을 강요하기도 했다. 피해자 장모씨는 2년 8개월의 근무 기간 중 11달은 주 12시간 이상 연장 근로를 했고, 휴일 수당도 받지 못하고 주말 근무에 동원됐다. 이날 간담회에는 피해자의 언니만 나왔다. 언니 장씨는 “과로와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던 동생은 지난 1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울먹였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