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수뇌부가 자치경찰제 도입 준비를 서두르는 것은 조직의 ‘사활’을 건 수사권 조정 문제와 자치경찰제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앞서 청와대는 자치경찰제 도입을 수사권 조정의 전제로 내세웠다. 지난 7월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수사권 조정과 자치경찰제 확립은 기필코 성공시켜야하는 과제”라며 “자치경찰제가 조직을 나누고 권한을 떼어주는 일인 만큼 내부 반발이 크겠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앞장서 달라”고 말했다.
13일 자치경찰제 도입 초안 발표
수뇌부 "수사권 조정 위해 넘어야할 산"
"수사 혼선 불보듯 뻔해" 부정기류도
다른 경찰 간부는 “지역의 특성과 상황에 맞게 행정이 이뤄지는 자치경찰제 하에서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밀착된 치안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늘 발표된 초안을 보면 자치경찰이 국가경찰 소속의 112상황실에서 합동으로 근무하고, 위원회를 통해 협력 체계를 갖추는 등 치안 공백이나 혼선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보였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뚜렷했다. 특히 자치경찰제 도입 후 수사에 혼선이 생길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23년 경력의 한 경찰관은 “범죄라는 게 칼로 무 자르듯 지방 범죄와 중앙 범죄, 강력범죄 일반 범죄로 나뉘는 게 아니다”며 “만약 한 범죄자가 서울, 제주, 강원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자치경찰제 하에서는 수사 주체가 누군지, 관할은 어디인지, 범행 수위가 어떤지를 놓고 범죄자를 잡아야 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서울 지역 강력계 형사는 “형사과와 지구대가 일체가 돼야 원활한 수사가 되는 건 현장 경험이 있는 경찰이라면 다 아는 상식”이라며 “지금 초안을 보면 예방이나 초동 대처는 자치경찰 하의 지구대에서, 수사는 국가경찰에서 하는 식인데 지휘체계 문제 등으로 인한 혼선이 불 보듯 하다”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위원장 정순관)는 최종적으로 지역경찰ㆍ교통경찰 등 4만3000여명(전체 국가경찰의 36%)을 자치경찰로 이관한다는 ‘자치경찰제 도입방안’ 초안을 내놨다.
서울 지역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비(非) 수사 분야에서 일하는 경찰들은 벌써부터 중앙직에서 지방직으로 신분이 바뀔 것이라는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개인 사정에 따라 지역 근무를 선호하는 사람도 일부 있겠지만 다수 경찰 지원자나 기존 경찰 사이에서 ‘서울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것 같다”고 했다.
시도지사가 자치경찰을 지휘하는 데 대한 우려도 나왔다.
정보과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시도지사는 결국 자신의 정치적 목적이나 입지가 뚜렷한 ‘정치인’인데 경찰력이 정치인의 정치 이벤트나 목적에 의해 낭비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22년 경력의 한 경찰관은 ”좋게 말하면 ‘지역 밀착형’이지만, 달리 말하면 지방에서 입김이 센 유력인사나 정치인 등을 조사ㆍ수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찰력이나 치안 서비스는 지역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행사돼야 하는 데 자치경찰제 하에서는 지역의 재정 형편 등에 따라 치안 양극화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수도권 지역 근무 경찰관)는 의견도 있었다.
신중론도 있었다.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아직 제도가 시행되지 않아 조심스럽다. 꼭 도입을 해야 한다면 시범운영을 통해 일선 경찰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문제가 되는 부분은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손국희ㆍ조한대ㆍ전민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