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 기계 개발에 쏟은 27년
9·10월 ‘이달의 기능한국인’
낮엔 직장, 밤엔 대학 다녀…매출의 4% 이상 R&D 투자, 1인 창업해 강소기업 일궈
92년 이 대표는 창업의 꿈을 이뤘다. 직원은 달랑 자신 한 명뿐이었지만 경남 창원에 지금의 ‘SMT’(옛 보국기업)를 설립했다. 주로 유공압(기름과 공기의 압력)을 응용해 타이어 알루미늄휠 부품을 제조하는 자동화 기계를 만들었다. 자동화 기계가 국내에 막 들어오기 시작했던 터라 크고 작은 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수주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사업이 승승장구한 덕에 지속적으로 사세 확장을 했지만 SMT만의 아이템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에 2009년부터 매출의 4% 이상씩 연구개발(R&D)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기존보다 생산성을 30% 높이고 절반 이상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펀치 코팅’ 방법과 집진기용 인젝터 증폭 효율 증가 기술 등을 적용한 상품을 개발했다.
또 2015년엔 경남 밀양에 제2공장을 세우고 그 안에 사내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연구 인력을 교육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SMT의 이름을 건 상품인 투척용 소화기와 정미기계, 분도기(각도 측정 도구) 등이 탄생했다. 이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을 기술인의 사명으로 여기며 일했다”며 “성과를 인정받아 좋은 상까지 받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영구적인 BLDC 모터 개발 성공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 대신 성남직업훈련학교에 진학한 봉 대표는 아버지의 권유로 ‘선반’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밤 10시까지 공부하는 노력파였다. 이후 선반뿐 아니라 밀링(절삭 가공)·연삭(거친 표면 가공) 등 기계의 기초 지식 전반을 두루 공부하며 당시 최초로 시행됐던 ‘기계가공기능사1급’도 취득했다.
봉 대표의 첫 직장은 동아건설이었다. 입사 때부터 그의 포부는 남달랐다. 면접 당시 동아건설의 공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자신이 보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호기를 보였다. 그 결과 함께 입사한 동기보다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다.
직업훈련학교 나와 취업… 부인과 함께 창고서 창업, 연 매출 150억대로 키워
하지만 봉 대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사업가의 꿈을 위해 안정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창원기능대 기계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연합정밀에 취직해 실무를 익히는 등 창업을 위한 예비 훈련을 했다. 연합정밀에서는 탱크 탑승자들이 의사소통하는 데 쓰이는 ‘인터콤’ 개발을 위한 자동화 설비를 구축했다.
봉 대표의 사업은 96년 충남 천안시 쌍용동의 10평 남짓한 허름한 창고에서 ‘봉봉전자’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직원은 자신과 아내 둘뿐이었지만 전동공구에 들어가는 모터를 함께 제조하며 사업을 꾸려갔다.
이때도 봉 대표는 계속해서 미래를 고민했다. 전동공구 시장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해 계량기 모터를 거쳐 BLDC 모터로 업종을 바꿨다. BLDC 모터는 가전제품과 자동차 등에 쓰이며 기존에 사용하던 DC 모터보다 에너지 효율이 좋고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BLDC 모터를 본격적으로 생산화 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결국 2006년 자체 기술을 확보했다. 이후 지난해 기준 연 매출 150억원을 달성하는 큰 성공도 거뒀다.
봉 대표는 서울대 최고산업전략과정과 공주대 최고경영자과정을 거치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고민 중이다. 그는 “좋은 상황에서도 언제나 미래를 생각한 것이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